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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14. 2020

가라앉는날

(나는 종종 일할때도 있고 종종 일을 안할때도 있는 아줌마 사람임을 서두에 밝힌다. 여기서 일이란 금전적 취득을 가져오는 지칭하니, 돈으로 환산이 안되는 육아와 집안일은 끊임없이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가르치는 일이 날아오를때가 있는가 하면 한없이 땅속으로 가라앉을때가 있다고. 

티칭이야 학생들과 인터렉션이 중요한 역할을 하니, 

날아오르고 가라앉을때 학생들이 나에게 어떤 반응을 해주는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근데 말이다, 티칭 뿐 아니라, 살림도 날아오를때가 있는가 하면 한없이 가라앉을때가 있는것 같다. 

어느날은 의욕에 넘쳐서, 

냉장고 속에 오래된 재료들 다 꺼내서 썰고 지지고 볶고, 

피클도 만들고 밑반찬 만들고, 

매일매일 뭔가 새로운 음식을 한답시고 장보러 가고, 

식사 뿐 아니라 디저트도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오랫동안 미루었던 찬장 정리를 한다거나, 

음식물 찌든때가 베어있는 애들 옷을 꺼내와서 푹푹 삶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화장실 주방 매트들 커텐 다 빨고 ...

이런때는 에너지도 고갈되지 않는 듯, 하루종일 몸을 움직여도 개운하다. 


근데 가라앉을때도 많다. 

시장가기도 싫고, 청소하기도 싫고, 밥 하기도 싫고, 아니 밥 먹기도 싫다. 

그렇지만 어미 된 자(?) 로서 내가 그렇게 하면, 

나에게 온몸을 맡기고 있는 가족들이 고생이니, 

가라앉을때에도 하고 싶은 대로 끝까지 가라앉지 못하고, 

하루세끼 밥은 해야 하는 형편이니 괴롭다. 

하긴, 학생들 얼굴 보기 싫은 날도 할수 없이 앞에서서 무언가를 해야 했던 괴로움이 떠오른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엔, 영양제가 필요하다. 

꽃 한다발 같은 그런 영양제.

그런 것들로라도 가라앉는 기분과 몸을 조금이라도 방방 띄워야만, 

오늘 저녁을 위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그래서 이번주는, 그로서리갔다가 집어온 

하얀 튤립 한다발을 영양제로 삼는다.



Photo by Roman Kraf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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