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제이 Sep 18. 2020

원래 그런 사람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 있는 새 모이통 때문에,

그 바로 옆에 있는 우리 나무가 피해를 보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자애로우신' 옆집 아저씨가 시도때도 없이 가득가득 채워주는 새 모이 덕분에,

우리동네 새들이 항상 그 모이통 주변에 북적이고,

우리집 사철나무는 그들의 식탁, 혹은 화장실로 열일 중인것이다.

새들이 나무에 볼일을 너무 심하게 봐서,

심지어 나무잎 색이 바래고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잘못없이 원래 그곳에 있던 나무에게 억울한 일이지만,

그 나무를 바라보는 우리 남편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다.


애들이 놀다가 다쳐도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그의 '최애' 나무가 얼룩지고 괴롭힘 당하고 있으니

우리 남편에게 새, 새모이, 새집, 그리고 그 모든 사단의 시작인 옆집 아저씨까지 한꺼번에

남편속을 북북 긁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할까.


지난 십년간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작은 문제한번 만들지 않고 조용조용살았던 옆집에게,

이런걸 말해도 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최근 정원일에 급격히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가 나무의 부모정도 되는줄 알고,

'나무' 문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남편은,

주방 창밖으로 새집을 예의주시하다가,

본인의 나무가 괴로워하며 내는 비명소리를 들은 양 버럭 하며,


나 지금 옆집에 가서 얘기해야겠어”란 말을,

지난 일주일동안 오십번도 더 한것 같다.

(물론, 한번도 못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 누어서도

근데 새집이 먼저 생긴거야 우리 나무가 먼저 있었던거야?”라고 첫마디를 뗄 정도로,

이 문제가 우리 부부에겐 제법 심각했다.

한국서는 이웃집간에 층간소음이 문제를 일으킨다더니,

그런게 왜 문제가 되고 어려운 일인지 알것 같기도 했다.


남에게 좋은 말도 잘 못하지만 싫은 말도 잘 못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런일은 늘 어렵다.

이건 내 나라에 살지 않기 때문일거란 생각을 했다.  

이런 문제를 얘기 하는게 이 사람들 정서에 맞는건지,

어떤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보다 덜 껄끄러운 일인지,

다른 이야기 끝에 살짝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공법으로 맞서는게 맞는지.

이곳에 산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이 곳 태생이 아닌 탓에 늘 정서와 문화 이런 문제는 어렵다.


사용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서로 의사소통이라는 목적 이외에도 뉘앙스라는게 있기 마련인데,

그런 표현은 오래 살아도 익숙해지기 참 어려운 것들이다.

'그래 이건 우리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살아 그런걸꺼야' 라고 소심한 우리 부부는 방어했다.


"우리가 한국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여보?"

"음 ....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겠지 머."


그래, 우리는 아마 내 나라에 살았어도

누구에게 무슨말 한번 하기 힘들어서 끙끙대고 그랬을 사람들이라는걸

얼마 안가서 깨닫고 조금 절망했다.


한국에서 같이 살아 본적이 없으니 우리가 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린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면 몇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연습하고 나서야

어렵게 말을 떼던 사람들이었다.

되도록 좋은게 좋다고

다른 사람과의 분쟁은 일단 피하고 보는 사람들.

그로 인해서 챙기지 못했던 내 몫도 많았고

잘못된 일들이 그냥 당연시 되기도 했다.


우리가 착하고 말고 그런건 아닌게,

그 와중에 화는 많이 나고 또 속은 엄청 쓰리기 때문이다.

부부사이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할말을 격하게 하기도 하는데,

부부처럼 맨날 볼 사이 아니고서야

그냥 문제를 피하는쪽으로 노선을 정하고 만다.


한국서 그런 류의 사람들이었다는것 까지 알고 만난건 아니었지만,

정도의 차이와 대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우리 부부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말 하면서 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 이었다는 것.


아마도 결국,

옆집 아저씨에게 '새 집'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채,

올 겨울을 보낼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기회와 방법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 결론에,

해결 방안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우리집에 하나 더 있다는게 다행스럽기도,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답답하기도 했다.


어쨋든, 새는 밉고 불쌍한 건 우리 나무.




Photo by Lachlan Gowe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변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