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제이 Sep 19. 2020

담배 한대 길이의 시간

얼마전 새 집으로 이사오고 나서,

남편과 나는 종종 이 집에 얼마나 오래살게 될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사실 이 집은, 결혼 후 9년동안 살았던 

“우리의” 첫집 이후의 두번째 집이라,

앞으로도 적어도 어림잡아 그 정도 시간은 보내게 될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제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학령기에 접어드니,

되도록이면 한 곳에서 큰 변화가 없는 환경을 제공하려면,

암만 못해도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는 

이 집에 살게될것 같다고 얘기했다.


올 가을 드디어 킨더에 들어가는 만 다섯살 둘째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라니.


상상도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시간이동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온 지난 십오년이 

한 2초 정도의 시간만 들이면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십오년의 시간도 

지금 이렇게 쓰던 글을 마치고 방에서 일어나 거실로 걸어나가면 

곧 닿을것 같다. 


시인 최승자의 <담배 한대 길이의 시간 속을>을 읽으면,

담배 한대 피우는 길이의 시간속에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말한다.


담배를 한대까지 피워본 적은 없어 모르겠지만,

따뜻하게 데워둔 차 한잔을 정성들여 마시던 시간, 

차가운 물을 세차게 틀어 손을 꼼꼼히 닦는 시간,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던 바람을 맞던 시간,


아마 그 시간들 속에서 

나의 세월은 훌쩍 십년을 건너왔다

말하게 될것 같다. 




<담배 한대 길의 시간 속을>

최승자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년이 흘렀다.

그동안 흐른것은

대서양도 아니었고

태평양도 아니었다.

다만 십 년이라는 시간 속을 

담배 한대 길이의 시간속을 

새 한마리가 폴짝

건너 뛰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미래의 시간들은

은가루처럼 쏟아져 내린다) 




Photo by Hesam Sameni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원래 그런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