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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창 Mar 19. 2020

청년 기업가 에디슨
1화. 바보 에디슨

에디슨의 출생과 어린 시절

'4차 산업혁명시대에 새로운 에디슨 찾기'(https://brunch.co.kr/@ipnomics/3)에서 왜 이 글을 쓰는지 이유를 간략히 설명하였습니다.



    에디슨의 부모는 캐나다 이민자 출신이다. 새뮤얼(Samuel Edison)과 낸시(Nancy Elliott)는 1828년 캐나다의 온타리오 지역에서 결혼했다. 새뮤얼은 여관업을 하고 있었고 낸시는 교사였다. 1837년 새뮤얼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보수적인 정치세력에 대항하는 폭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그 폭동은 실패로 끝나고 그는 생존을 위해 가족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망명을 해야만 했다. 새뮤얼이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은 오하이(Ohio)주의 밀란(Milan)이었다. 밀란은 조선업과 운하를 통한 곡물 수송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1839년 새뮤얼은 아내와 아이 모두를 밀란으로 데려왔다. 새뮤얼은 벌목사업과 경매 등에서 사업수완을 보이면서 조금씩 부를 축적했다. 에디슨이 태어날 즈음이 되면 그는 그 지역의 꽤 부유한 중산층에 속할 수 있었다. 1847년 2월 11일 이른 아침 눈이 오고 있었다. 이날 에디슨은 새뮤엘과 낸시 엘리엇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에디슨이 태어났을 때 가족들은 기쁨보다 걱정을 많이 했다.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컸기 때문에 의사는 ‘뇌척수막염’에 감염되어 곧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게다가 몸이 허약하고 질병이 잦았다. 에디슨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세 명의 손위 형제가 모두 사망한 터라 새뮤얼과 낸시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디슨 출생      


    에디슨은 붉은 벽돌로 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이 위치한 곳은 밀란의 운하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 전망이 좋았다. 1840년 후반 밀란은 약 1천 5백 세대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곡물 시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거리에는 밀을 가득 싣고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가 다니고 있었다. 이들 물건을 실은 마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매우 복잡한 기계가 사용되었다. 물건을 내리고 올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거중기(擧重機), 물건을 수평으로 운반하기 위한 활차(滑車), 이런 기술과 도구들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된 것들이지만 당시로는 꽤 첨단 기술이었다. 호기심 많은 에디슨에게 이런 기계들은 ‘신기함’ 그 자체로 보였을지 모른다. 에디슨이 성장하면서 그는 부친이 운영하던 제재소(製材所)에서 톱과 수동 드릴을 다루고 판자에 못 질을 하는 법을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바보 에디슨

   

    에디슨은 이곳 밀란에서 잠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의 유난히 큰 머리와 이상한 행동은 교사들을 의아하게 했고 학생들에게는 불쾌감을 유발했다. 어린 에디슨의 코를 흘리고 더러운 얼굴을 한 모습은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아이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일부 아이들은 그를 ‘바보, 에디슨’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에디슨은 끊임없이 질문했다. 교사에게 질문해서 선생이 '모른다'고 답변하면 에디슨은 ‘왜, 알지 못하죠'라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에디슨의 행동과 끝없는 질문은 주변 사람들을 '혼동'의 세계에 빠뜨렸다. 


멍청이 에디슨


  여섯 살 때 에디슨은 헛간을 불을 지르기도 했다. 새뮤얼은 왜 그랬는지 에디슨에게 물었다. 어린 에디슨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서라고 대답했다. 에디슨의 대답에 새뮤얼은 분노했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 에디슨을 심하게 매질했다. 심지어 어린 에디슨은 그의 엉뚱한 행동으로 인해 한 친구의 죽음을 보기도 했다. 어느 날, 에디슨은 한 친구와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친구가 사라졌다. 에디슨은 그 친구가 나타나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에디슨은 어두워지자 더 오래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에디슨에게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묻기 시작했다. 이어 마을 사람 전체가 횃불을 들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개울가에서 그 아이를 시체를 발견했다. 에디슨은 사람들에게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를 설명했다. 에디슨 자신은 그때의 사건을 '비극'이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그는 학습능력이 떨어지지는 저능한 아이 취급을 받게 되었고 학교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부친 새뮤얼은 어린 에디슨을 '멍청이'로 취급했고 에디슨 자신도 '지진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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