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식 Dec 25. 2021

밥상

나는 그 시절이 그립지 않다. 

 허리가 굽은 내 엄마가 밥상을 차려 주신다. 엄마는 냉장고를 열고 물김치 통을 꺼내 놓고, 삶아놓은 죽순을 꺼내 데치고, 말린 갈치를 꺼내 조리신다. 오몰락 꼬몰락 한참을 바쁘시다. 그러다가 또 냉장고 문을 열고 바라보신다. ‘내가 뭘 꺼내려고 했더라?’ 하는 눈빛으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신다. 그 눈빛이 송아지처럼 깊고 맑다.       


우리 엄마는 냉장고 안쪽 깊숙이 있는 간장 게장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는 검지 손가락을 푹 찍어 맛보시고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신다. 살랑바람에 흔들리는 할미꽃처럼 느리고 굼뜬 당신. 내가 옆에서 이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당신은 눈치를 못 채고 반찬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마침내 압력밥솥 뜸이 들어 “치이 치이” 소리를 내자, 엄마는 더 분주해진다. 주걱으로 고실고실한 밥을 고봉으로 쌓아 올리고, 맨손으로 뜨거운 밥을 토닥여 모양을 만들고 , 자작자작 양념이 잘 배인 갈치조림과 갖가지 맛난 반찬은 내 쪽으로 줄줄이 갖다 놓으신다. 당신은 그래도 뭔가 아쉬운지 내게 묻는다.

“달걀 후라이 하나 부치주까?”  


내가 총각일 때, 객지 생활하다가 가끔 고향 집에 올 때도 그랬다. 큰 사발에 봉오리가 생기도록 밥을 담고, 뜨끈한 고깃국과 함께 밥상을 차려 주셨다. 당신은 밥을 먹는 나를 끝까지 지켜보시다가, 내가 남기지 않고 밥그릇을 비우면 활짝 웃음을 짓으셨다. 그리고는 금방 슬픈 얼굴로 중얼거리셨다. 

“그동안 얼마나 못 챙겨 먹었으면...”

하지만 어쩌다 밥 생각이 없어 조금이라도 남길 때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도 주려서 뱃가죽이 붙어서 안 들어가는가 갑다.”

당신은 다 큰 아들을 늘 안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내가 당신 품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일 년에 한 번은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셨다. 생일 전날 장롱 깊숙이 넣어둔 놋그릇을 꺼내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닦았다. 그리고 생일날 아침이 되면, 빛나는 놋쇠 식기에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올리고, 뜨거운 놋쇠 국그릇에 더운 김이 나는 미역국을 넘치도록 펐다. 갖가지 나물과 크고 통통한 생선도 올라왔다.      


엄마는 생일상을 북쪽을 향하게 놓고, 다소곳이 꿇어앉아 손을 비비셨다. 나는 지금도 생일날 아침마다 당신이 기원하시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선조 조상님, 선조 조상님 오늘이 우리 집 큰아들 생일 인디. 어쩌든지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쫓아 댕기는 말 맹키로 건강하게 해 주시고... 어쩌든지 공부 잘하고 친구 동기들 간에 사이좋게... 어쩌든지 바른 사람 되게 해 주시고... “     

손바닥 가운데 새알 넣고 굴리는 듯한 엄마의 부드러운 손 비빔 동작이 신비로웠다. 젊은 내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씩은 나를 왕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 세월이 모두 다 지났다. 무정한 내리막 세월에 엄마가 애지중지 아끼던 놋쇠 그릇도 오래전에 사라졌고, 당신 품 안에 자식들도 하나 둘 새처럼 날아갔다. 당신이 차려주신 밥상에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함께 식사하는 일은 기억조차 희미한 일이 되었다.     


이 까지 쓰다 말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주무신단다. 아홉 시도 안됐는데 벌써 한잠이 드셨단다. 그 시절 자식을 위해 날마다 소원 빌던 두 손, 이제는 쭈글쭈글해진 두 손을 팔 베개로 모아 아이처럼 주무신단다.            


*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0년 전, 어느 날에 쓴 글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