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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04. 2022

[동화] 파란 나라 카네이션

평화는 어디에 오는가


파란 나라 카네이션


우주에 소문이 났어요. 회색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우주를 파괴하고 있다고요. 전쟁을 좋아하는 회색 외계인들은 다른 행성을 마구 공격했지요. 우주를 지배하려는 거예요. 회색 외계인들은 자기들끼리도 늘 싸움을 벌였어요.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그래요. 자기들끼리 끝까지 싸울 수는 없으니까, 근질거리는 폭력을 다른 곳에서 풀려고 그러는 거죠.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은 회색 외계인에게 당했어요. 이제 우주 동쪽 끝에 있는 파란 행성만 남았어요.       


하지만 회색 행성의 외계인 대장은 고민이 하나 있었어요. 파란 행성을 빼앗고 나면 더 이상 싸울 곳이 없잖아요. 그러면 또 자기들끼리 싸우게 되고, 우주는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 모두 사라질 거예요.  회색 대장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파란 행성에 있는 평화를 빼앗아 와야겠어!’     

파란 외계인들은 착한 마음을 가졌어요. 회색 외계인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파란 행성 대표 외계인이 말했어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아주 멀리멀리 가면 살기 좋은 행성이 있을 것입니다!”

파란 외계인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났어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파란 행성처럼 살기 좋은 곳이 없었어요.


착한 외계인들은 할 수 없이 파란 행성으로 돌아왔어요. 전쟁은 싫지만, 파란 행성에 숨겨 둔 우주 칼이랑 주먹 펀치만 있으면, 회색 외계인을 이길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이미 회색 외계인이 쳐들어와 모든 무기를 차지해 버렸어요.

“어서 오시오. 착한 외계인님들, 환영합니다.”     

회색 외계인이 마치 자기들이 파란 행성 주인인 것처럼 말했어요. 그리고 착한 외계인을 해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정말 그랬어요. 회색 외계인들은 전쟁을 일으키지도 폭력을 쓰지도 않았어요. 그냥 착한 파란 외계인처럼 행동했어요. 왜냐하면 착한 외계인이 가지고 있는 평화를 훔쳐야 하니까요.      


회색 외계인들은 파란 외계인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 보았어요. 아침에 세수하고 아침밥 먹는 것부터, 밤에 이불을 덮고 자는 행동까지 따라 했어요. 심지어 딸꾹질하거나 방귀 뀌는 것까지 따라 했지요. 그렇게 해봐도 평화가 어디서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러기를 삼 년 되는 어느 날 마침내 찾았어요. 회색 대장은 부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평화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엄마였어!”     


엄마 가슴속에 있는 평화는 엄마 품, 엄마 눈빛, 엄마 손길로 나와서,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고 했어요.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이,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닷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회색 행성 부하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습니다. 대장님, 파란 행성 엄마들을 보면 눅눅해진 마음이 꼬슬꼬슬 집니다.”  

“좋아! 그럼 엄마들 마음속에 있는 평화를 어떻게 훔칠 것인지 작전을 짜 보자.”     

회색 행성 외계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쑥떡쑥떡 이야기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회색 행성 외계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어요.     


다음 날, 외계인 대장이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어요.

“파란 행성 외계인 여러분, 그동안 여러 가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께 선물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모니터를 보던 착한 외계인이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웅성했어요. 회색 외계인 대장이 말을 이었어요.

“우리는 파란 행성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여행을 시켜 드리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들이 날마다 고생하기 때문입니다.”     

착한 외계인들은 겁이 났지만, 누구도 반대를 하지 못했어요. 회색 대장이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파란 행성을 대표하는 외계인이 질문했어요.

“대체 어디로 갑니까? 얼마 동안 여행을 하는 거죠?”

“우주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로 갑니다. 단 하루 동안만요.”     


파란 외계인들은 하루 동안이라는 말에 조금 안심했어요. 꼬마 외계인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어요.

“엄마를 위해 하루 정도는 참아 보겠어요. 그런데 만약 엄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해요. 하루 만에 돌아온다는 걸 어떻게 믿나요?”

“하하하 똑똑한 꼬마로군. 그래서 미리 약속을 적어 왔지.”

외계인 대장이 약속을 쓴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습니다.

[회색 행성 외계인은 파란 행성 엄마들을 여행시켜 드린다.

우주여행은 단 하루, 24시간을 넘기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우리 회색 외계인은 이 약속을 죽음보다 소중하게 지키겠다.]     


사흘 뒤 아침 8시, 예쁜 모자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엄마들이 비행선에 올랐어요. 파란 행성 외계인들은 엄마들을 축하하기 위해 비행선에 커다란 분홍색 풍선을 달아 드렸어요. 우주 비행선이 풍선 머리띠를 한 것 같았어요. 우주 비행선은 천천히 우주를 향해 날아갔어요.        


파란 행성의 하루는 금방 지나갔어요.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어요. 그런데 분홍 비행선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왜 안 오지?”

“밤 12시가 돼야 도착할 것 같아요.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 밤 12시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집집마다 엄마 없는 저녁 식사를 하고 또 기다렸어요. 드디어 밤 12시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번에도 분홍 비행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된 거야?”

“아침 8시에 출발했으니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야 24시간이 되겠네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파란 외계인들은 밤을 새웠습니다. 하지만 아침 8시가 되어도 비행선이 안 나타났어요. 파란 행성 대표가 외계인 대장한테 우주 화상 전화를 걸었어요.

“아니,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 거죠?”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조금 전에 그곳을 출발해서 이제 막 안전띠를 풀었습니다.”

“뭐라고요? 여기는 꼬박 하루가 지났다고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곳은 분명히 4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회색 대장이 시계를 보여주었어요. 정말 8시 4분이라는 숫자가 반짝거렸어요. 파란 외계인이 물었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도대체 뭐가 잘못됐죠?”

“잘못된 것 없습니다. 시간이 다를 뿐이죠. 우주에 1일은 파란 행성의 1년이니까요.”     

그랬어요. 파란 행성에서는 24시간이었지만, 우주에서는 딱 4분이 지난 시간입니다. 회색 대장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는 약속을 했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약속은 꼭 지켜 주기 바랍니다. 그럼 내일 아침, 아니 일 년 후에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파란 행성에는 날마다 엄마가 없는 아침이 시작되었어요. 아침에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는 일, 청소하는 일 등을 가족들이 나누었어요. 꼬마 외계인들도 자기 일은 자기가 챙겨야 했어요. 아빠 외계인들은 너무 힘들었어요. 집안 곳곳에 빨랫감이 넘치고 구석구석 먼지가 쌓였어요.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어요. 착한 외계인들은 갈수록 지쳐갔어요.

     

한 달째 되는 날, 파란 행성 대표가 회색 대장에게 우주 화상 통화를 신청했어요. 파란 외계인들은 모두 모니터 앞에 앉아 지켜보았어요. 커다란 화면에 회색 외계인 대장이 나타났어요.

“왜 또 전화하셨습니까?”

“너무 힘들어요. 엄마가 없으니 엉망진창이에요. 벌써 한 달째 고생하고 있다고요.”

“쯧쯧 안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떠난 시간은 겨우 2시간입니다.”

“못 믿겠어요! 우주 시간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요. 엄마들을 보게 해 주세요.”

“외계인 대장인 나를 못 믿겠다고요. 그럼 엄마들 말은 믿겠습니까?”

“당연하죠. 우리 착한 외계인들은 엄마를 믿어요.”

“좋습니다. 엄마 모습을 보여드리죠. 하지만 이번 딱 한 번 만입니다. 겨우 하루 동안 여행인데, 자꾸 전화하면 여행에 방해가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커다란 화면이 엄마들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어요. 엄마들은 차를 마시면서 우주를 바라보거나, 책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엄마들 중에서 한 분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어요.  

“아들, 별일 없지? 겨우 2시간 지났는데 벌써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오늘만 참아. 잘할 수 있지?”

착한 외계인들은 한 달이 지났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저녁이 되려면 열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참았어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엄마들은 파란 행성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우주가 정말 아름답구나. 다음에 우리 가족이 함께 오면 좋겠어. 저녁때 집에 가면 맛있는 요리 해 줄게요. 사랑해.”

그날 밤 착한 꼬마 외계인들은 이불속에서 울었어요.     


또 한 달이 지났어요. 파란 외계인들은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깨달았어요. 하지만 힘든 일도 제법 익숙해졌어요. 모두가 서로 위로하며, 열 달만 더 참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런데 파란 외계인들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았어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냈어요. 어린이날이 되어도 아무도 즐겁게 노래하지 않았어요.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있었죠. 꼬마 외계인 얄리는 카네이션을 사러 갔어요. 엄마는 없지만 카네이션은 사두고 싶었어요.

“올해는 카네이션을 팔지 않습니다.”

문방구 아저씨가 말했어요. 편의점도 마트도 백화점에서도 카네이션을 팔지 않았어요. 어디서도 카네이션을 살 수 없었어요. 회색 외계인 대장이 특별 명령을 내린 거예요.

“카네이션을 팔거나 만드는 외계인은 무서운 벌을 받음.”    

 

올해는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못 달아 드릴 것 같아 슬펐어요. 얄리는 엄마 방으로 갔어요.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에는 엄마 방에 가서 엄마 옷을 뺨에 대고 비비고, 엄마 베개를 안아 봐요.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져요. 오늘은 엄마가 앉았던 화장대에 앉았어요. 거울 앞에 있는 예쁜 화장품 병에서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작은 서랍도 열어보았어요. 왼쪽 서랍에는 시계, 도장, 브로치, 작은 액세서리 같은 물건들이 있었어요. 오늘 쪽 서랍에는 수첩, 메모지, 영수증과 편지 같은 종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서랍 깊숙이 작은 비닐봉지에 뭔가 있었어요. 아! 카네이션!     

작년에 엄마 가슴에 달아 드린 카네이션이에요. 엄마는 그 카네이션을 버리지 않고 서랍 안쪽에 고이 넣어두었어요. 얄리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어요. 작년 카네이션에 얄리가 흘린 눈물 자국이 생겼어요.     


그 시간, 우주에서는 엄마들이 점심 식사를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화려하고 긴 식탁에 별의별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어요. 그런데 얄리 엄마가 음식을 먹으려다 말고 숟가락을 놓았어요. 왼쪽 가슴에 갑자기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얄리 엄마가 옆에 있는 다른 엄마에게 말했어요.

“이상해요. 가슴이 아파요.”

옆에 있던 엄마도 말했어요.

“저도 그래요. 조금 전부터 가슴이 아리더니 지금은 쓰려요.”

여기저기서 엄마들이 말했어요.

“가슴에 동그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시려요. 왜 이럴까요”


파란 행성 꼬마들이 카네이션을 꺼내 보며 울던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멀리 우주 끝에 있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했어요.

“아파서 숨을 못 쉬겠어요. 도와주세요.”     

회색 행성 대장이 놀라서 요리사와 의사들을 불렀어요.

“음식이 상한 것 아닌가?”

“아닙니다. 엄마들은 아직 한 숟가락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빨리 진찰을 해보시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아니 뭐라고! 그러면 가슴속에 있는 평화는 어떻게 되는 거야.”


회색 대장은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엄마를 아프게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엄마 가슴이 아프면 평화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엄마들이 회색 외계인들한테 말했어요.  

“혹시, 우리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우리 아이들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엄마들은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우주 속을 날던  분홍 비행선이 멈칫 멈칫하기 시작했어요.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어요. 어버이날이에요. 얄리는 화장대 서랍에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과 새로 쓴 편지를 넣어 두었어요. 그리고 창문가로 와서 연보랏빛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엄마.”     

그 순간 동쪽 하늘 끝에 점 하나가 보였어요. 얄리는 눈을 비비고 자세히 바라보았어요. 멀리서 동그란 점이 조금씩 커지면서 파란 행성으로 내려오고 있었어요. 커다란 분홍색 풍선이에요. 파란 행성의 모든 꼬마 외계인들이 잠에서 깨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분홍 우주 비행선이 천천히 파란 나라에 착륙하고 있었어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 Fotocitizen>




*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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