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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11. 2022

[동화] 사랑을 받으면

뒤죽박죽 파티라도 괜찮아요

2022년! '보글보글'과 함께 하는 글놀이
1월 2주
[4장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완성하라!]



사랑을 받으면


입이 무지하게 큰 물고기가 있어. 이름은 대구야. 노총각인데 아직 장가를 못 갔어. 입이 너무 커서 다른 물고기들이 가까이 오지 않았지. 대구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거든. 물고기들은 대구가 무섭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야. 얼마나 순하고 착한데.      


대구는 웃음이 많아. 바닷속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가는 소리만 들어도, 꽃게가 옆으로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해초가 흐늘흐늘 움직여도 미소를 지었어. 미소 알지? 입을 닫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짓는 웃음 말이야. 대구는 웃을 때 미소만 지어. 입을 벌려 큰 소리로 웃지 않아. 다른 친구들이 무서워할까 봐.     


하지만 대구도 큰소리로 웃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어. 예를 들어, 가오리 아줌마가 느림보 거북이 아저씨 등짝에 찰싹 스매싱을 날려서 거북이 아저씨가 비틀비틀할 때 말이야.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어. 그럴 때 대구는 얼른 입을 틀어막고 재빨리 바위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우 하하하하 우 하하하하 어허허 우 하하 껄껄껄....”

대구가 그 큰 입으로 얼마나 크게 웃는지, 동굴 밖으로 모래 바람이 불 정도라니까.       

 

어느 날, 병어 아가씨가 대구 총각을 찾아왔어. 병어는 대구와 완전 달라. 입이 너무너무 작아. 아마 물고기 중에서 그렇게 작은 입은 없을 거야. 병어 아가씨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지. 

“대구 씨, 당신 입은 참 매력적이에요.”

“병어 양, 당신 입도 참 매력적이에여.”

“대구 씨, 당신이 큰 입으로 웃으면 커다란 대문이 활짝 열리는 것 같아요.”

“병어 양. 당신이 작은 입으로 웃으면 보석이 반짝반짝하는 것 같아여.”     


대구는 생전 처음 동굴 안에 들어가지 않고 껄껄 웃었어. 눈물이 찔끔 나도록. 그 바람에 모래 물결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지고 옆에 있던 물고기들이 날아가 버렸어. 하지만 병어 아가씨는 대구 아가미 안에 숨었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으니, 대구도 이젠 자신 있게 웃게 되었어. 


대구 총각과 병어 아가씨가 사귄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어. 먼 나라에 있는 나비 공주도 그 소문을 들었어. 나비 공주는 부지런한 꿀벌을 시켜 초대장을 보냈어. 

[대구 님과 병어 님에게

다음 주 금요일, 제 생일에 두 분을 초대하고 싶어요. 와 주신다면 정말 영광일 거예요.

맛있는 음식과 멋진 공연을 준비하겠어요. 꼭 오셔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요.]

병어 아가씨가 꿀벌한테 말했어.

"고마워요. 그날 우리가 춤을 춰 드릴게요."      

나비 공주의 심부름을 하던 꿀벌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어. 그런데 바로 옆 나뭇가지에 투명한 동그라미가 점점 커지고 있었어. 자세히 보니 거미 혼자서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야. 거미는 자기 엉덩이에서 나온 거미줄을 뒷발로 꼼꼼하게 빗어 부챗살처럼 만들었어. 그리고 바깥쪽에서부터 동그라미를 만들듯 빙빙 돌면서 둥근 그물 모양을 만드는 거야. 꼼꼼하게 더 꼼꼼하게! 튼튼하게 더 튼튼하게!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잠시도 쉬지 않고 빙빙 돌면서 동그란 그물을 만들고 있었어. 깻잎만 한 거미집이 호박잎만큼 커졌어. 

꿀벌은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날아갔어. 그런데 하필 그때 바람이 휙 불어서 끈끈한 거미줄이 꿀벌 날개에 찰싹 달라붙었어. 호박잎만 한 그물이 출렁거렸어. 거미가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더니, 난데없이 꿀벌이 붙어 있잖아. 거미는 속으로 ‘아, 뭐야! 아직 다 만들지도 않았는데.’ 라면서 짜증을 냈어. 왜냐하면 꿀벌은 힘이 세서 금방 거미줄을 찢고 달아나거든. 거미가 이렇게 말했어.

“망했다. 망했어!”

처음부터 다시 거미줄을 쳐야 되잖아. 거미는 꿀벌 쪽으로 가면서 한숨을 쉬었어. 

“진짜 망했다!”


그런데 이상해. 꿀벌이 가만히 있는 거야. 꿀벌은 자기 방 침대에 누운 것처럼 푹신한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거든.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거미가 꿀벌을 노려보았어. 

“미안해요. 조금만 더 누워 있으면 안 될까요?”

꿀벌이 거미를 바라보았어. 오! 그런데 가까이 보니 거미가 너무 멋진 거야. 몸이 온통 검은색이었어! 꿀벌은 검은색을 진짜 좋아하거든.     


거미도 깜짝 놀랐잖아. 꿀벌 모습이 눈부셨어. 황금색 몸에 줄무늬가 있고 멋진 안경까지 쓰고 날개가 무려 네 개씩이나 있잖아. 게다가 도망가려고 파닥거리지 않았어. 거미줄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지. 꿀벌이 누운 채로 조용히 말을 했어.

“이제 거미줄로 칭칭 저를 옭아매고 잡수시겠죠?”

“아니에요. 저는 딱딱한 곤충은 먹지 않아요!”

“아! 그럼 부드러운 나방을 좋아하시나 보죠.”

“나방 따위는 더욱 싫어요. 가루가 많이 날려서 지저분해요.”

“그럼, 무얼 먹고 살죠?”

“이슬...”

“예?”

“나는 아침 이슬을 먹고살아요”

그건 그래. 아침이 되면 거미줄에 이슬방울이 주렁주렁 맺히거든. 투명한 구슬 목걸이처럼 말이야. 거미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어.

"하지만 배가 많이 고프면 작은 벌레 정도는 먹어요."

거미는 꿀벌 날개에 붙은 거미줄을 하나하나 떼 내어 주었어. 꿀벌은 감동했지. 그래서 묻지도 않는 말을 했어.

“저는 생일 초대장을 돌리고 있는 중이에요. 일주일 뒤에 나비 생일 파티가 열리거든요. 당신을 꼭 초대하고 싶어요.”

꿀벌이 거미에게 공손히 초대장을 주었어. 거미가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어.

“감사해요. 그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려야겠네요.”

거미도 꿀벌도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    


 드디어 나비 생일날이 되었어. 아름다운 나비 공주님이 반짝거리는 보석이 달려있는 공주 옷을 입고, 손님을 맞이했어. 제일 먼저 꿀벌과 거미가 도착했어. 둘은 나비와 인사를 나누었지.   

“안녕하세요. 나비 공주님. 정말 눈이 부셔요.”     

부지런한 꿀벌과 거미는 파티 준비를 도왔어. 꿀벌은 선물로 가지고 온 꽃가루와 꿀을 접시마다 나누어 담았어. 거미는 거미줄을 타고 다니며 식탁을 닦고, 식탁보를 반듯하게 깔고, 꿀벌이 준비한 음식을 날랐지.


대구 총각과 병어 아가씨도 왔어. 커다란 케이크를 가지고 왔어. 엄청나게 큰 케이크였어. 아마 냉장고만 할걸. 병어 아가씨는 부드러운 나비 날개에 입을 맞추며 인사했어.

“예뻐요. 나비 공주님.”      

손님들이 계속 줄지어 입장했어. 까치, 돼지, 무당벌레, 풍뎅이, 해마... 손님들은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앉았어.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사마귀가 사회를 보았어. 

“자 여러분,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겠어요. 시작!”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비님.  생일 축하합니다.♫”    

 

두더지가 눈을 질끈 감고 폭죽을 터뜨리자 모두 박수를 쳤어. 삑삑 휘파람도 불었지. 이제 케이크 촛불을 꺼야 할 차례야. 사마귀가 말했어.

“자, 나비님 후 하고 불어주세요.”

나비 공주가 말했어.

“저는 입으로 부는 바람이 약해요. 여러분이 함께 후 해주세요.”

손님들이 모두 입술을 오므렸어.

“하나, 둘, 셋” 

후~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태풍 같은 바람이 불어 냉장고만한 케이크를 순식간에 날려 버렸어. 커다란 생크림 케이크는 하얀 베개를 던져 놓은 것처럼 사방에 흩어지고, 벽과 천정에는 눈덩이가 붙은 것처럼 난리가 났어.  손님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지. 잠시 후, 케이크를 뒤집어쓴 돼지가 소리쳤어.

“누구야!”

누구 때문인지 알겠지? 맞아, 대구! 대구가 그 큰 입으로 바람을 불었으니, 케이크가 남아나겠어. 하지만 대구는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 생일 파티는 생전 처음 왔거든. 생일 파티라는 것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인가 보다 하고, 탁자에 묻은 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고 있었지.  

“음, 맛있쩌.”      


벽에 붙은 크림 속에서 나비 공주가 나왔어. 보석이 달린 옷은 없고 대신 하얀 밀가루 포대를 둘러쓴 것 같았어.

“어머, 이게 뭐야. 난 몰라.”

나비는 얼굴을 가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      

천정에 붙어 있던 검은 거미는 하얀 거미가 되고, 생크림 속에서 고개를 내민 거미와 꿀벌은 마주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어. 크림 속에 있던 작은 얼굴들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어. 손님들은 서로 얼굴을 보고 깔깔 웃더니, 케이크 조각을 던지기를 시작했어. 생크림과 꿀 접시와 과일들이 공중으로 막 날아다녀.     

 

그때 나비가 문을 열고 나타났어. 나비는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크게 소리를 질렀어.

“오늘 파티 완벽해요! 자, 그럼 신나게 놀아볼까요!”     

참새와 매미가 연주를 시작했어. 풍뎅이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헤드뱅잉을 하고, 대구와 병어 아가씨도 막춤을 추었어. 이제 거미가 노래를 부를 거야. 약간 어수선하지만 열심히 연습을 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


거미는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을 타고 공중에서 노래를 시작했어. 꿀벌이 거미 주위를 붕붕거리며 날아다녔어. 그런데 갑자기 거미줄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어. 크림이 묻어 무거워진 거야. 거미는 바닥에 볼 품 없이 떨어졌어. 하지만 얼른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어. 꿀벌은 더 신나게 몸을 흔들었어. 


드디어 노래가 끝났어. 모든 손님들이 거미 노래에 반한 것 같았어.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어. 꿀벌이 거미에게 다가가서 말했어. 

"참 잘했어요."

"예... 그런데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꿀벌이 거미 귀에 대고 속삭였어.

"괜찮아요. 좀 서툴면 어때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 되는 거잖아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 Pexe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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