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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Mar 01. 2022

하동에 오시면

하늘 길, 물 길, 꽃 길

3월 1주
 "나는야 우리 동네 홍보대사"
 
경상남도 하동을 소개합니다.



인사

그곳에서 새벽 첫차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도착할 즈음에는 읍내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 일상을 열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시외버스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는 초면이지만 느낌만으로도 서로를 감지할 수 있겠지요. 누구든 먼저 보는 사람이 망설이지 말고 자신 있게 다가갑시다. 


하동의 물길은 섬진강입니다. 꽃길은 봄에 흐드러진 십리 벚꽃 길이고요. 하늘 길은 지리산 자락입니다. 오늘은 먼저 하동 송림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에서 가서 이른 점심을 먹겠습니다. 그리고 십리 벚꽃길을 천천히 걷다가 오겠습니다. 괜찮으실런지요?


하동 맛

재첩국과 녹차

먼길을 달려와 배가 출출할 테니 재첩국을 대접하겠습니다. 하동 사람은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그 작은 조개를 경조개라고 불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지방 사람들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재첩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진하고 뽀얀 국물이 먼지처럼 묻은 여독을 시원하게 씻어 줄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하동 녹차는 담담하게 떠나갈 때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좋은 차입니다. 낮은 차나무에서 자란 보드라운 찻잎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따서 가마솥에 덕어 만듭니다. 그 맛이 참으로 여리고 순하지요. 오늘 여정을 마치고 하동을 떠나가시기 전, 마주 앉아 지리산 산자락의 맑은 향기를 음미해 보기로 해요. 


송림

하동 송림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그대로 인 것. 천년 동안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이웃처럼 살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옆으로 나란히 넓은 백사장과 푸른 섬진강이 우애 깊은 삼 형제처럼 앉아 있는 곳. 하동 송림입니다.


칠백 그루가 넘은 솔밭이 큰 동네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과 다른 자세로 서 있습니다. 높고 커다란 소나무들은 거친 강바람과 따가운 모래바람마저 손목을 잡아 쉬어가게 합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올려다보면 까마득하지만, 내려다보는 미소는 넉넉합니다. 그 아래에서 온몸으로 솔향기를 느끼며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 걸어 보십시오. 보물찾기 하듯 당신과 닮은 소나무를 찾아보십시오. 하동 송림에는 신기하게도 유달리 눈길이 가는, 나만의 소나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는 동화 속 거인처럼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을 보듬어 주고 사람 품에 안기기를 좋아합니다. 그 커다란 그늘 밑에서 마을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고, 멋 모르고 헤엄치다가 강물에 빠진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정신을 차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시인을 꿈꾸던 고등학생이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혼자 걷고, 기차를 타고 직원여행을 온 어린 여공들이 소나무 뒤에 숨어 생전 처음 소주 맛을  본 곳입니다. 소나무는 비늘 같은 껍질로 남아 있는 희로애락의 세월을 당신이 만지도록 허락합니다. 


섬진강

하동포구 팔십 리

섬진강은 떠나가는 사람을 선뜻 송별하지 못합니다. 송림을 떠나 화개장터로 가는 길을 나서면, 강은 가느다란 목에 물빛 스카프를 두른 여인처럼 당신을 바라봅니다. 한참을 가다가 넓은 들판을 지날 때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들판 가운데 부부송이 있습니다. 어린 서희와 길상이 살던 최참판댁이 있는 마을입니다. 두 그루 소나무는 그 시절 애환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지금도 그렇게 함께 있습니다. 섬진강 물길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길입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잊었던 추억과 해후할 수 있습니다. 앞선 강물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잔물결을 일렁이게 합니다. 강마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상념에 젖다가 언뜻 깨어 허탈하거나 슬퍼져도 괜찮습니다. 뒤따르는 새 강물이 어두워지는 마음을 천천히 밀어 보낼 것입니다. 


화개장터

화개 장터

강 건너 한 많은 전라도 땅이 보입니다. 지친 나귀를 끌고 산 넘고 물 건너온 보부상처럼 약간 들떠도 좋습니다. 그 시절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와 장을 보러 온 옛사람들은 없고, 길가에 펼쳐놓은 장마당 풍경은 약간 어색하지만, 손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상인들의 소박한 마음으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은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은어, 겨울은 섬진강 하류 깊은 물에서 따온 벚굴이 별미랍니다. 화개장은 잔치집처럼 당신을 기다립니다. 무엇을 드실는지요. 나는 지리산에서 따온 나물과 버섯을 참기름으로 맛을 낸 산채 비빔밥으로 하겠습니다. 혹시 잘 익은 막걸리 한잔을 하고 싶다면 은어회무침이나 은어 튀김을 시키겠습니다. 


배가 부르면 느린 걸음으로 장 구경을 시작합니다. 필요한 약초를 한 두 가지 미리 생각해 두시면 더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때쯤 신명 나는 장구 장단에 얹힌 걸쭉한 노랫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배짱 좋고 게으른 화개장터 각설이는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라서 잘 모르겠지만,  운이 좋아 당신과 함께 흥겨운 놀이판으로 들어가서 어깨춤을 추면 좋겠습니다.


십리벚꽃길

화개 십리 벚꽃

꽃 피는 마을 화개.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에 화개로 오십시오. 쌍계사로 가는 십리 길에 꽃 터널이 하늘을 가립니다. 사람들이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꽃 강을 따라 흘러가는 길입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벚꽃 배는 아주 느리고 더딘 뱃놀이기에, 세월아 가거라 하고 몸과 마음을 맡기셔야 합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걸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백 년 동안 해로한다고 해서 혼례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이  끝날 즈음, 산등성이 여기저기 소담스러운 차밭이 있습니다. 산사로 가는 길목입니다. 낮고 푸른 차나무들은 겸손한 스님처럼, 달뜬 당신을 산사로 안내할 것입니다.       


해가 하늘 가운데서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이제 오던 발길을 되돌릴 시간입니다. 거슬러 올라온 섬진강은 엄마 품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포근한 여정, 되돌아 내려가는 길은 엄마 품을 떠나 집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강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다시 강을 보아도, 섬진강은 한시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섬진강 나루

섬진강 나루터

강 이편에 서서, 강 건너 저쪽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으신지요. 만약 기다리던 사람이, 만나야 할 사람이 어슴프레 잊히고 이제 내 마음에서 놓아주고 싶다면, 고전면 재첩 길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십시오. 오래전에 사람들이 강을 건너던 나루터입니다. 이제는 나룻배도 뱃사공도 없어 아무도 그 강을 건너가지 못하기에 더 이상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당신이 저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동안 기다릴 뿐입니다. 상념은 당신 몫이니까요. 


강바람이 붑니다. 오늘 제가 모실 곳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 바다가 멀지 않았으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싱싱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출처: 하동군 홈페이지> 



* 이전 매거진 글, 로운 작가님 '고양, 운정 맛집을 소개합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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