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멈췄다. 이미 한 번은 했던 생각들을 다시 붙잡고,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말들을 다시 의심했다. 글이 끝나갈수록 확신보다는 질문이 더 많이 남았다. 아마 처음부터 이 글은 답을 찾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질문을 붙잡기 위한 기록이었는지도 모른다.
AI는 여전히 내 옆에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움을 주고, 몇 번씩 나보다 빠른 답을 내놓는다. 이제 나는 그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기술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해지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 되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 답을 그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 한 번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이 문장이 내 이름으로 남아도 괜찮은지 묻는다. 그 질문이 생긴 뒤부터 일의 속도는 조금 달라졌다.
AI 시대에 변리사로 산다는 건 더 특별한 기술을 갖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자주 설명해야 하고, 더 자주 판단해야 하며, 더 자주 책임 앞에 서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기술이 일을 줄여주기보다는 일을 바라보는 태도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눈에 띄는 변화도, 극적인 장면도 없다. 대신 매일 비슷한 질문을 반복한다. 이 선택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날이 와도 괜찮은가. 이 관계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 질문들은 늘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조금 망설인다.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완벽하게 답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질문만큼은 자동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일한다는 건 정답을 갖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버리지 않는 일에 가깝다. 왜 이 선택을 했는지, 왜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는지, 그 결과를 다시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 일이다.
기술은 점점 더 많은 문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문장들 중 어떤 것은 내가 쓴 것보다 더 정확하고 더 설득력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 문장을 고르는 데 오래 머문다. 그 오래 머무는 시간이 내가 아직 이 일 안에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보다 생각해야만 하는 상태가 아직은 나를 안심시킨다. 판단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감각이 나를 다시 일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하나 분명해진 것이 있다. 기술은 많은 직업의 형태를 바꾼다. 그러나 판단의 자리와 설명의 자리, 그리고 결과 앞에 다시 서는 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가 바로 사람이 남는 자리다.
나는 그 자리를 비워두지 않기로 했다. 기술을 쓰되 끌려가지 않고 도움을 받되 중심을 넘기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편해지는 대신 주도권을 잃는 길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방향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일하기로 했다.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틀릴 가능성을 인정한 채 그래도 내가 결정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이 책은 하나의 답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킬 뿐이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가도 사람은 선택의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방향이다.
나는 앞으로도 AI와 함께 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서 계속해서 나만의 기준을 고쳐 쓰고 설명을 다시 만들며 문장의 결을 살필 것이다. 그 일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직 필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빠르게 결정되는 시대에 결정을 늦출 줄 아는 사람, 설명을 남길 줄 아는 사람, 관계를 끊지 않는 사람 말이다.
이 글을 덮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어떤 기술 곁에 서 있든 한 번쯤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무엇을 맡기고 있고, 무엇을 아직 붙잡고 있는가.'
그 질문이 남아 있다면 이 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들이, 우리 각자의 시간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