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 Delacroix. 초콜릿 맛 도시가 필요할 때
이상하게 겨울엔 쉬운 걸 고르고 싶어진다.
대단한 영화보다 <나 홀로 집에>가 떠오르고, 리히터의 추상보다 명동 신세계 크리스마스 파사드가 보고 싶다. 그냥 달콤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해진달까. 추울 때 핫초코 한 잔이 모든 걸 녹여주듯이.
사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오늘은 어려운 질문들을 내려두고 핫초코 같은 이름을 한 잔 꺼내 본다. 바깥공기는 벌써 겨울 연습을 시작한 것 같으니까.
미셸 들라크루아.
겨울이면 제일 먼저 꺼내 먹게 되는,
초콜릿 맛 도시 한 조각.
겨울은 도시가 가장 따뜻해지는 계절이 아닐까.
공기 사이로 작은 온기들이 떠다니는 계절.
주머니 속 핫팩, 붕어빵 봉투 위로 올라오는 김, 겹겹이 쌓이는 말풍선 같은 입김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도시의 체온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들라크루아의 겨울 도시는 그 모든 온기를 한데 모아 흔든 스노우볼 같다. 밤이 올라탄 하늘 아래 눈송이가 캐럴처럼 후드득 떨어지면, 트리 꼭대기 별도 눈을 깜빡인다. 슈가파우더에 굴린 듯 달콤한 도시.
여기엔 소리 지르는 사람도,
급하게 뛰어가는 그림자도 없다.
불안, 죄책감, 조급함—
그런 없어도 되는 감정들은 잠시 꺼둔 거리.
그냥,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은 풍경.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마음까지 데워지는,
주머니 속 손난로 같은 한 장면.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집에 걸고 싶어.
그래서인지 들라크루아는 상업공간에서 자주 만난다. 백화점 기획전, 호텔 복도, 로비 한쪽 벽. ‘오늘의 명화!’보다는 “보고 있으면 하루가 조금 부드러워지는 그림” 쪽에 가깝다. 천장이 아주아주 높은 갤러리보다 우리 집 소파 위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림. 그리고 은근슬쩍 가격표를 찾아보게 되는 그림.
거장의 그림은 정보로 먼저 다가온다.
“얼마에 낙찰됐대.”
“어디 미술관 소장 작가래.”
이런 식으로.
하지만 들라크루아 앞에서 그런 정보는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먼저 반응하는 건 이미지 자체다. 익숙한 예쁨, 낯설지 않은 색 조합, 어디선가 본 듯한 거리. 그리고 “나도 저기 들어가 걷고 싶다”는 마음.
논리가 아니라 순수한 호감의 속도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나이브 아트(naive art)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말하지만 그 정의도 반쯤만 맞다. 나이브 아트는 흔히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그림’을 의미하지만 정작 그는 에꼴 드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교육을 풀코스로 받은 사람이다.
이 그림의 요점은 작가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긴장을 얼마나 부드럽게 풀어주느냐에 가깝다. 원근법이 정확하지 않아도, 인물 비례가 단순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우린 풍경화를 볼 때 “저 풍경에 들어가고 싶다”는 느낌이 정확한 투시보다 먼저 오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이 “이건 왜 여기 있을까?”를 묻는다면,
나이브 아트는 다정하게 말한다.
굳이 생각 안 해도 돼. 그냥 봐.
그래서 나이브 아트는 감상자에게 문제를 내지 않는 그림,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예술이다. 생각을 일하게 만드는 예술이 있다면 나이브 아트는 그 반대편, 마음을 쉬게 해주는 쪽에 서 있다.
겨울이 되면 손이 가는 것들이 달라진다.
평소엔 글렌 굴드와 ECM 레이블로 플리를 채우던 사람도 12월엔 마이클 부블레의 캐럴 앞에서 무장해제된다. “언젠가 봐야지” 하고 쌓아 둔 아트 필름, 칸느 수상작 리스트는 그대로 눌어붙어 있는데, 막상 연말 저녁 재생 버튼을 누르는 건 <나 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재탕이다.
공간도 비슷하다.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하얀 벽보다 동네 카페 트리 앞에서 우린 더 오래 서 있다. 이걸 두고 “겨울만 되면 사람들이 취향을 버린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근데 더 정확한 말은 이쪽이다.
겨울이 되면, 우린 취향의 난이도를 낮춘다.
겨울은 체온도, 기분도 함께 내려가기 쉬운 계절이다. 몸이 추우면 우리는 자동으로 따뜻한 걸 찾는다. 담요, 핫초코 같은 물리적인 난방만이 아니라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 가사 한 줄까지 다 외운 노래,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연말 로코 같은 정서적인 난방 기구들까지.
심리학에서는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사람이 예측 가능한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뇌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거다.
지금은 모험보다,
답을 아는 문제를 풀고 싶다.
새로운 걸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이걸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이라고 부른다. 쉽게 읽히는 장면일수록, 우리는 그걸 ‘덜 피곤한 선택’으로 느낀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새로운 자극보다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걸 아는 장면으로 기운다. 멋 부리는 취향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워진다. 그 순간 예술의 위계도, 장르의 서열도 쉽게 무너진다. 이런 계절에 우리가 고르는 기준은 멋있음이나 새로움이 아니다.
그냥, 보고 나면 마음이 덜 피곤해지는 것.
그 조건을 정확하게 채워 주는 게 들라크루아다.
들라크루아의 풍경은 얼핏 보면 동화책 삽화 같다. 색은 부드럽고, 선은 단순하고, 사람과 마차는 장난감처럼 동글동글. 딱 보고 드는 첫 생각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림”인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오히려 이렇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안전기지에 가깝다고.
들라크루아의 도시는 보통 아래를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진다. 우리를 풍경 안이 아니라, 풍경 바깥에 올려놓는 자리.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세계를 위에서 살피는 느낌이다. 집집마다 켜진 창은 “여기는 아무도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라는 증거처럼 반짝인다. 조용한 거리는 당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평온하다.
애착이론에서는 우리가 반복해서 돌아가는 장소를 ‘안전기지(Secure Base)’라고 부른다. 언제 가도 나를 해치지 않을 것 같은 곳. 별일 없을 걸 이미 알고 있는 장소. 현실의 파리는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들라크루아의 파리는 어른들을 위해 만든 안전기지의 축소판이다.
겨울이 되면 나는 이런 곳으로 눈을 돌린다.
나를 시험하는 그림보다 잠깐 쉬게 두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는,
생각보다 자주 미셸 들라크루아의 도시다.
나는 원래 그림 앞에서 생각부터 꺼내는 사람이다. 구도를 보고, 색을 읽고, 심리학과 미술사에서 끌어온 개념들을 머릿속에서 주르륵 호출하는 사람. 맥락과 시대, 상징까지 빠짐없이 챙기려는 조금 피곤한 타입.
이 글도 처음엔 그랬다. 나이브 아트를 정의하고, 장르를 비교하고, 심리학 용어를 불러오며
겨울엔 왜 취향의 난이도가 내려가는가?
이걸 진지하게 증명하려고 들었으니까.
근데 사실, 그림 앞에서만의 버릇이 아니다.
글 앞에서도 난 늘 구조부터 꺼내 든다.
누가 시험지를 내민 것도 아닌데, “최소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기준을 펼쳐놓고, 즐거워서 시작한 글이 슬금슬금 프로젝트처럼 굴러가는 순간. 머릿속 작은 편집장 하나가 팔짱을 끼고 나타난다.
그런데 그 편집장, 휴가 보내고 싶어졌다. 사무실 히터 틀어놓고, 담요 속에 몸 절반을 말아 넣은 채 글을 쓰자니 내 예민한 더듬이가 잘 안 선다. (더 추워지기 전에 이 연재를 마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이 내 시야를 넓혀줘야 한다고 믿었다.
새로운 해석, 새로운 관점, 새로운 세계.
지금도 그건 변함없다.
근데 겨울이 되면, 신기하게도
그 믿음보다 먼저 손이 가는 풍경이 있다.
그림 앞에서도, 글 앞에서도
힘을 조금 빼고 싶어지는 계절이니까.
Sometimes you’re just the sweetest thing.
Like Christmas, summer vacation,
and a brand-new puppy rolled into one.
가끔 넌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사람 같아.
크리스마스랑 여름 방학,
막 데려온 강아지를 한데 말아 놓은 것 같이.
-Haruki Murakami,
『Sputnik Sweetheart』
예술도, 글도
늘 우릴 시험해야만 하는 건 아닐 거다.
특히 겨울엔 더.
들라크루아의 도시는 딱 그런 풍경이다.
크리스마스랑, 여름 방학이랑,
막 집에 데려온 새끼 강아지를
한꺼번에 돌돌 만 것 같은 장면.
매년 여는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빌리지,
명동 신세계 파사드의 미친 반짝임,
12월이면 어디든 침투하는 마이클 부블레,
쇼케이스를 가득 채운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입 깨물면 겨울이 달아지는 것들.
겨울엔, 그렇게 그냥 있어줘도 되는 날이 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덜 피곤해지는 풍경 하나로.
어려운 질문은 잠깐 덮어 두고,
초콜릿맛 도시 한 조각을 천천히 녹여 먹는 밤.
겨울엔 조금 나이브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겨울엔 그냥
들라크루아.
올해 겨울도
나는 또 이 도시를 제일 먼저 꺼내 먹게 된다.
들라크루아의 도시를 마지막으로
호크니 시리즈의 커튼을 내립니다.
12월엔 미국맛으로 다시 만나요 ☕
여러분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뭔가요?
저는 언제나 The Holi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