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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수프와 오레오튀김의 공통점

Andy Warhol. 원앤온리가 되기 위해 기계가 된 남자

by 한이람




미국은 오레오를 왜 튀길까?



근데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요



그런 게 왜 궁금해?


이런 말을 할 때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단 거의 핀잔에 가깝다.


왜 핀잔을 주냐고? 내 질문은 대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쓸데없는 걸 잘 궁금해한다. 내 물음표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거면 뭐든 다다. 심지어 요즘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뻗쳐가고 있다.


미국은 나의 물음표를 무한생성하는 곳이었다.

모든 게 과했고, 달랐고, 그래서 궁금했다.


마트 감자칩 코너는 너무 컸고, 11월만 되면 마을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뒤덮였으며, 테마파크나 축제에선 오레오를 튀겨대고 있었으니까. 그냥 먹어도 맛있는 오레오를 굳이 베이컨으로 돌돌 말아서.


갑자기 오레오튀김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

어떤 남자랑 한 번 엮여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공감도 안 가고, 이해도 못하는 걸

So What? 하면서 계속한 사람.




브랜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트도 워홀을 거치면 예술의 컨셉이 된다. © Halcyon Gallery


바나나, 통조림 캔, 코카콜라, 세제 박스.


주말 마트 쇼핑 리스트 아니냐고?

앤디 워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다.


팝아트의 상징적인 인물, 앤디 워홀. 그는 가난한 이민자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경질환을 앓아 유년기를 침대 위에서 보낸 아이.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위해 색칠공부책을 건넸고, 그게 그의 첫 캔버스가 됐다. 뭐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예술가 서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워홀은 2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향해, 길거리에서 직접 포트폴리오를 돌리며 자기 PR을 했다. 삽화가로 먼저 입지를 다졌고, 보그, 더 뉴요커 같은 잡지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회사를 세운다. 이름은 “앤디 워홀 엔터프라이즈”.


왜?

그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한 예술가가.




One and Only

2년 동안 2천 점. 작업이 아니라 생산. (1964) Photography by Ugo Mulas


I want to be a machine.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Andy Warhol


따각따각— 찍고, 또 찍는다.


워홀의 작업실, 더 팩토리. 그 이름처럼 그의 그림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찍혀 나온 듯하다. 무표정하고 평평한 얼굴. 작업실엔 유화 물감 냄새 대신 잉크 냄새가 났고, 붓질 대신 롤러의 규칙적인 리듬이 그림을 완성했다.


실크스크린.

잉크를 밀고, 찍고, 또 찍는 기술.


기계가 되고 싶었던 한 예술가의 전략이었다. 그가 선택한 실크스크린 기법은 당시 예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실크스크린은 광고 이미지에나 쓰이는 상업적인 인쇄 기술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예술이야.”


보수적인 미술계의 반응은 당연했다.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오늘날 AI가 예술계에 주는 혼란처럼. 실크스크린이라는 전략은 처음엔 예술의 위계를 흔드는, 달갑지 않은 시도였다.


하지만 워홀은 알고 있었다. 그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건 작품이 아니라 이미지라는 걸. 그는 작품을 찍어내는 동시에 자신을 그 이미지의 일부로 함께 만들어갔다.


그런데 그 전략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Crak! (1963-64) © Estate of Roy Lichtenstein


사실 기계가 되고 싶은 남자가 또 한 명 있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은 마블보다 먼저 만화를 미술관에 들여온 사람이다. 미국에 팝 아트가 등장한 1960년대 초,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이 동시에 그림의 소재로 택한 대상은 만화였다. 워홀은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보고 깨닫는다.


아, 이건 내가 못 이기겠네.


좌절했을까? 전혀! 워홀은 만화를 빠르게 포기하고 새로운 해답을 찾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광고와 인쇄 세계에서. 그것이 실크스크린이었고, 그의 무기가 됐다. 광고에서는 그저 효율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당시 미술계의 문법 안에선 one and only가 될 수 있었다.


작품의 소재도 그렇게 골랐다. 진부하고 감정이 마모된 이미지들. 너무 많이 소비되어, 더는 의미가 남지 않은 감각들. 그걸 키치(Kitsch)라고 한다. 워홀은 키치를 예술의 액자 안에 집어넣었다. 광고에서나 볼 법한 캠벨수프, 지나치게 소비된 셀럽의 얼굴을 반복하면서. 싸구려라 여겨진 것들에 예술의 무게를 얹었다.


예술로, 브랜드로, 반복의 미학으로.

그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래야 나만의 방식이 되니까.




메타인지라는 무기

Metacognition is the new sexy.


한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

이젠 흔한 일이지만, 그 시작은 앤디워홀이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뭘까?


그의 전략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워홀은 예술가이기 전에 전략가였다. 그가 입고, 말하고, 보여주는 모든 것은 ‘예술가 워홀’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소비시킬지 계산된 연출이었다.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 늘 쓰고 다녔던 가발, 인터뷰에서 툭 던지던 짧고 무표정한 대답까지 그에겐 하나의 전략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워홀은 ‘메타인지(초인지, metacognition)’가 강한 사람이었다. 자기감정과 행동, 사고의 흐름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워홀은 이 능력을 통해 자신을 외부 시선으로 조망했고, 그 시선을 다시 활용할 줄 알았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지를 빨리 파악하고, 그 안에서 앤디 워홀이라는 브랜드를 기획했다.


그는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이미지로 기획했다.


그가 메타인지를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 하지 말 것을 구분했고, 조건과 한계를 전략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비극까지 브랜딩한 남자

그는 총을 맞았고, 그 흔적까지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는 조용한 관종이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도, 스포트라이트를 필요로 했다. 모든 파티에 참석했고, 카메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등장했다.


그의 전략은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들을 ‘죽음과 재난‘이라는 연작으로 만들었다. 신문 속 교통사고 사진, 전기의자 형 집행 사진까지. 비극의 소비는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마저 그가 노린 관심의 일부였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까지 활용한 사람이었으니까.


1968년, 그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여성이 그를 향해 총을 쏜다. 워홀은 복부에 총상을 입었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끝에 살아남는다. 죽음 앞에서 되살아난 예술가. 대중의 시선은 더욱 집요해졌고, 워홀은 그 틈을 놓칠 수 없었다. 곧바로 셀럽과 상류층 고객들의 초상화를 고가에 제작하며 ‘브랜드 앤디 워홀’을 팔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비극조차도 전략의 일부였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걸 위해 시대의 흐름도, 자신이라는 자원도 정확히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욕망에 솔직했던 사람.

앤디 워홀은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왜 글을 쓰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뜬구름 잡는 질문, 쓸모없어 보이는 의문, 그런 것들을 모아 글을 쓰고 있다. 사업을 하는 아빠는 특히 이런 날 이해하지 못한다.


돈도 안 되는 걸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Self-Portrait (1966) by Andy Warhol



워홀이라는 남자를 보며 내 물음표가 날 향한다.

나는 왜 쓰는 걸까?


워홀은 유명해지고 싶었다.

나는...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렇게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도 어쩌면 닮아 있다.

So What?을 외치며,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상업광고에 쓰이던 실크스크린, 마트에 굴러다니는 캠벨수프 캔. 손그림으론 경쟁자를 못 이긴다고 생각한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것들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그가 가진 걸로, 그만의 방식으로. 원앤온리가 되기 위해.


물론 내가 워홀처럼 전략적으로 오레오튀김을 주제로 글을 쓴 건 아니다. 셀럽이 되고 싶지도 않고. 그렇지만 더 많은 공감을 위해 잘하지도 못하는 걸 굳이 고르고 싶진 않은 마음. 그것만큼은 이 남자랑 닮았다.


가끔 내 글이 멋없다고도 느낀다. 감성과 교훈이 가득한 글 사이에서 미국은 왜 오레오를 튀기는지나 묻는 글. 쓸모없는 거 같고, 좀 짠하고 우스워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데리다니 벤야민이니 불러오는 것보단, 그런 질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나답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쓴다. 삶을 쓰고, 생각을 쓰고, 자기가 만든 세계를 쓴다. 글을 쓴다는 건 자발적 고통의 시간이다. 의미를 만들어내고, 다듬고, 스스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일. 그럼에도 그저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많다. 그건 유명해지고 싶었던 워홀의 방식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일상의 질문을 추적하고 싶어서.

하루를 남기는 루틴으로.

내가 만든 세계를 꺼내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글을 쓰며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동기는 달라도 이건 비슷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간다는 것.



전 두 번째 걸로 주세요! Campbell's Soup I (1968)



생각하고, 고르고, 쓰고, 지우고,

다시 써보는 일련의 결정들.

그 선택이 쌓일수록 우린 나에게 가까워진다.


메타인지가 지나치게 발달했던 어떤 예술가처럼.


자기인식을 통해 나를 조율하고,

루틴이란 이름으로 매일 더 단단해지고,

퇴고라는 이름으로 날을 벼리는 일.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의 예술가,

아니, 자기인식을 무기로 바꾼 한 남자가 그랬듯.


글은 저마다의 무기를 찾는 실험이다.

감정, 관찰, 유머—뭐든 무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총알이 날아올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단해지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까.





쓸모없는 말을 사랑하는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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