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허용하는 소리의 온도차
튀김집 앞을 지나가던 날이었다.
'지글지글, 탁,탁! 사르르—'
기름 속에서 무언가가 바삭하게 터져나가는 소리가 먼저 들렸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간판이 나왔다.
한때 학교 앞에서 꽤 유명했던 그 튀김집이었다.
소리만 들었는데도 군침이 돌았다.
튀김이 익어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맛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는 입에 닿지 않지만, 이상하게 감각을 움직인다.
그날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리도 맛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얼마 후, 일본 여행 중 라멘집에서 다시 떠올랐다.
주문한 라멘이 나왔고, 나는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서 들려온 소리가 꽤 강렬했다.
후루룩, 후루루룩, 면을 끌어당기는 소리가 의도적으로 컸다.
‘면치기’라고 부르는 그 소리는
누군가에겐 맛있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조금 낯설고, 솔직히 말하면 비위가 상했다.
튀김 소리는 왜 맛있고, 면치기 소리는 왜 불쾌한 걸까?
혹시 그 기준도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학습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 집 튀김이 더 맛있었던 건
먹기 전에 들렸던 그 소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글지글, 탁,탁! 사르르—'
그 몇 초 사이에 튀김은 이미 내 입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실제로 먹었을 땐 오히려, 상상했던 바삭함보다 덜했는데도
입맛은 이미 예열이 끝난 상태였다.
소리는 직접 입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온도, 질감, 타이밍 같은 미묘한 정보를 먼저 전달한다.
지글지글은 ‘지금 막 조리되고 있음’을,
탁탁 튀기는 소리는 ‘표면이 바삭하게 익는 중’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는 시각보다 빠르게, 미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소리는 혀로 느끼는 게 아니지만,
그 순간 우리는 분명히 ‘맛을 느꼈다’고 착각한다.
반대로, 어떤 소리는 입맛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내겐 면치기 소리가 그랬다.
일본 여행 중 라멘집에서 처음 들었을 때,
그건 마치 면을 먹는 게 아니라 흡입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이게 예의라고?” 싶은 낯섦도 있었고,
그보다 먼저,
입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그대로 외부로 튀어나온 느낌이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튀김 소리나 찌개 끓는 소리는
‘조리 중’인 소리고,
면치기는 ‘먹는 중’의 소리다.
소리는 감각이지만, 동시에 관계다.
내가 만든 소리는 익숙하지만,
타인의 감각이 그대로 들려올 땐 경계가 생긴다.
특히 입 안 소리는 그 경계가 가장 얇은 쪽에 있다.
맛있게 먹는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너무 가까운 감각,
혹은 들어오지 않아야 할 감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면치기 소리가 낯설게 들렸던 건
내 감각에선 불쾌한 소리였지만,
그 공간에선 오히려 맛있게 먹고 있다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라멘이나 우동을 소리 내어 먹는 게
요리사에 대한 예의라고 여겨진다.
‘맛있게 먹고 있다’는 걸 들려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서양에선 정반대다.
식사 중 소리를 내는 건 예절을 어긴 것으로 본다.
맛은 혼자 느껴야 하는 감각이고,
입안 소리는 공유하면 안 되는 정보다.
한국은 그 사이 어디쯤 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나
아삭, 김치 씹는 소리엔 관대하면서도,
면치기나 크게 떠먹는 소리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기준이 ‘소리의 종류’보다
‘문화의 허용범위’에 가깝다는 점이다.
어떤 소리를 맛있다고 배웠는지,
어떤 소리를 감춰야 한다고 학습했는지에 따라,
우리는 같은 소리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소리는 입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순간, 우리는 입 안을 움직이는 감각을 넘어서고 만다.
먹는 행위가 타인에게도 들리는 순간,
감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게 된다.
소리는 먹는 감각인 동시에,
가장 얇은 감각의 경계선이다.
그래서 어떤 소리는 식욕을 키우고,
어떤 소리는 입맛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의 거리를 다시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