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식빵을 두께로 고른다

식빵 한 조각으로 보는 세 나라의 감각

by 한이람



도쿄 여행 중,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편의점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진열대 한쪽, 식빵만 빼곡히 놓인 코너.


식빵은 보통 '식감'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두께'가 곧 선택이다.


그런데 전부 조금씩 다르게 썰려 있었다.

4개입, 5개입, 6개입, 8개입…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두께 단위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조금 어이가 없으면서도 신기했다.

‘이렇게까지 나눌 필요가 있을까?’

‘두께를 다르게 파는 이유는 뭘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긴자에 있는 한 빵집을 떠올리게 했다.


-센트레 더 베이커리.

그래. 일본은 식빵에 꽤나 진심이었다.


버터도, 식빵도, 감각의 수가 다르다.


그곳은 빵을 파는 가게라기보다,

식빵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만든 장소였다.


처음엔 그저 ‘유명한 빵집’이라고만 들었는데,

가게 안에 들어선 순간,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토스터기부터 고른다.

리스트엔 발뮤다부터 브라운, 라쿠첸까지

이름도 모르는 일본 브랜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음은 식빵.

세 가지 종류의 식빵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결이 다른 빵들이 같은 온도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버터가 놓여 있었다.

홋카이도산 생버터, 무염버터, 솔트버터...

평소라면 고민하지 않을 선택들이

이 날만큼은 괜히 중요해 보였다.


나는 잠시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

토스터기에서 나는 ‘사각’ 소리,

식빵 가장자리에 흐릿하게 배어든 온기,

버터가 살짝 녹는 속도.

모든 감각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식빵을 굽는 시간만으로도 하루가 정돈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득, 전혀 다른 나라의 식빵이 떠올랐다.

미국 마트의 원더브레드.


항상 제일 아래 진열대에 쌓여 있던,

하얗고 가벼운 식빵.

비닐 포장을 열면 빵은 바로 눌렸고,

접으면 그대로 접힌 채로 있었다.

버터도, 토스터도 필요 없었다.


대신, PB&J가 있었다.


피넛버터와 젤리, 그리고 흰 식빵. 너무 익숙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던 맛이 미국엔 있었다.


PB&J는 Peanut Butter & Jelly Sandwich,

피넛버터와 젤리를 식빵 사이에 바른,

미국식 도시락 단골 메뉴다.


지퍼백에 쏙 넣어 책가방에 던져두고,

점심시간에 꺼내 먹는 게 익숙한 풍경.

엄마가 싸주는 사람도 있고,

카페테리아에서 사 먹는 학교도 있다.


빵은 무심했고,

맛은 늘 같았고,

그래서 오히려 추억의 맛이 되었다.


식빵은 그저, 뭔가를 바르기 위한 바탕이었다.

‘굽는다’는 행위는 생략되고,

‘두께를 고른다’는 개념도 없었다.


그러니까,

긴자의 작은 식빵 전문점에서

토스터를 고르고,

버터를 고르고,

식빵 한 조각을 신중하게 굽는 그 시간이

조금은 낯설었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미국도, 일본도

모두 식빵을 주식처럼 먹는 나라지만,

그걸 대하는 태도는 이렇게 다르다.


한쪽은 익숙함의 바탕,

다른 한쪽은 정성의 대상.


그리고 한국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식빵을 받아들이는 나라다.


식빵이 하루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드물다.

대신, 샌드위치용, 프렌치토스트용,

때론 계란물에 적셔 구워 먹는 아침 대용식으로 쓰인다.


종류도 많고, 두께도 제법 다양해졌지만

그건 식빵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고른 선택지에 가깝다.


식빵은 주연이 아닌, 배경이자 도구였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은 식빵을 진지하게 대하진 않지만,

그만큼 어떤 식빵이든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두께든 괜찮고, 어떤 방식이든 괜찮다’는

그 태도 안에는 오히려

무언가를 끼워넣고, 구워보고, 실패해보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도쿄의 편의점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식빵 하나로도,

이렇게 다른 나라들이

이렇게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멋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식빵을 구울 때마다 한 번쯤 생각한다.


두께는 빵의 문제이기도 하고, 하루를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두께로 살고 싶은지.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

프롤로그부터 맛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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