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일상을 지키는 쉐다곤파고다

여행 2일 차 / 우리도 쉐다곤이 지켜준걸까?

by 떼오 Theo
공허한 듯 흩날리지만,
밀도가 가득한 아침공기에 일찍이 잠에서 깼습니다.


다행히 어제의 배탈여파는 가라앉은 듯해요. 하지만 일찍 잠에서 깬 이유는 밤새 뱃속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났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세균과의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잠에서 깨고 만 것이죠. 일어난 김에 가볍게 산책을 하기 위해 간단한 소지품만 주섬주섬 들고 숙소 밖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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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더운 공기가 내 살결을 덮으며 맞이했고, 이내 시끄럽지만 굳이 피하기 싫은 경적소리가 제 귀를 때립니다. 원하던 것을 찾은 양 제 입꼬리도 같이 배시시 올라가네요. 혼자 걷고 있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 소리는 없지만 '나 너무 행복해!!'라고 속으로 외치는 중입니다. 거리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아저씨들, 일하러 가기 위해 한글이 쓰여있는 작고 낡은 버스에 몸을 싣는 젊은이들, 학교에 가기 위해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신기한 듯이 저를 쳐다보며 걷는 아이들, 그들이 보기에 저는 한국에서 온 외부인이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평범한 일상에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특별할 게 없어서 특별한,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 이런 평범한 행복이 그리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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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육교를 올랐어요. 육교 위에서 말을 거는 한 청년. 가이드를 해준다며 가격을 제시했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저는 지금은 일정이 있어 어렵고, 필요하면 연락하겠다며 명함을 받았어요.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한 파고다가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기 싫어 얼른 사진을 부탁해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곤 기분 좋은 인사와 함께 그와 헤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격을 후려(?) 치는 삐끼(?) 일 수 있지만, 그는 또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런 있을지 모를 사정과 별개로 그 조차 순수한 청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저녁에 가기로 했기에 낮 시간 동안 시간이 비어 있는 상태. 마침 동행 중 한 분이 시간이 괜찮다고 하여 저희는 양곤순환열차를 타보기로 했습니다. 양곤순환열차란 말 그대로 양곤시내를 한 바퀴 도는 열차인데, 열차라고 하기에는 낡고 느려 운행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여행에서 열차는 설렘을 가리키는 법. 열차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그렇듯 좋은 기억으로 돌아와 추억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탑승할 순환열차는 '여행에서의 이동을 위한 탑승'이 아니었습니다. 양곤 주민들의 일상을 좀 더 가까이 들어가 보고 싶어 선택한 것이었어요. 양곤주민들에겐 너무나 중요한 교통수단이죠. 집과 일터를 연결, 가족과의 만남, 신과의 조우 등 각자의 목적에 따라 순환열차를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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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탑승을 위해 양곤역에 도착했습니다. 과거 영국양식으로 지어진 열차역이 덩그러니 자리해 있더군요. 오랜 세월의 아픔을 기억하며 현재는 양곤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기차.


저희가 일상에 들어가는 걸 허락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넵니다. 누가 봐도 관광객 웃음. 자본주의 가득한 미소에도 돌아오는 건 언제나 변함없는 '인자한 웃음.' 그들은 상대방이 가족이든, 친구든, 심지어 관광객이든 언제나 같은 웃음을 건넵니다. 그 웃음은 솔직해 보였어요. 그러기에 진심입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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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며 시간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에 어색한 저희는 표정으로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다 드러났나 봅니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발로 열차가 도착하더라고요. 운이 좋게도 바로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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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열차 내부의 모습은 소박했어요. 열차라기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편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안방 같았습니다. 열차 내부에 의자가 있었지만 단순히 존재에만 의미가 있었고,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 모습은 일상 속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쌓여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저도 잠시나마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인레인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현지시장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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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만큼 현지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도 없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제 눈에 띈 것은 바로 론지(미얀마 사람들이 즐겨 입는 치마형태의 전통의상). 저는 9년 전 그랬던 것처럼 론지를 구입합니다. 상점 주인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저에게 론지를 입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그리웠습니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과정들. 온갖 마케팅과 가격경쟁 시스템, 호객행위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인들은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고객들은 필요한 것을 삽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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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 시계가 울리네요. 양곤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다시 인레인역으로 돌아가 열차를 기다립니다.

한 시간 반 후… 열차가 도착합니다. 뱃속 시계는 더욱 크게 울립니다. 알람을 끄기 위해 열차 내부 상인에게 작은 과일을 하나 구입해 먹습니다. 하지만 실패. 양곤에 도착하자마자 미얀마 전통국수로 뱃속 알람시계를 급하게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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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들,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울 수 있죠.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기준을 조금만 낮춘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평범함 조차 남들 기준에 맞추고 살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 말하는,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집에, 평범한 가족 구성원에, 평범한… 평범한… 이러한 평범함의 기준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요?


언제나 그렇듯 ‘인자한 웃음’을 건네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평범함의 지혜에 대해 배웁니다.


곧장 양곤의 상징, 쉐다곤파고다를 보기 위해 또 다른 동행과 합류해 택시를 탑니다. 쉐다곤에 가까워질수록 묘한 긴장감과 보이지 않는 무거운 기운이 저희의 택시를 짓누르는 듯 택시는 천천히 이동합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경건하게 입구로 들어갑니다.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쉐다곤파고다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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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카메라는 한 없이 작고 작은 프레임뿐. 가만히 앉아 눈으로 담아봅니다. 고양이도 얌전해지는 이곳.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쉐다곤파고다는 더욱 강력하게 빛납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불교신자들을 보니 종교를 떠나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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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빠듯해 나갈 채비를 합니다. 쉐다곤의 빛에 눈이 멀었던 걸까요? 파고다를 나가려고 하니 나가는 출입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파고다감옥이 따로 없더군요. 동서남북으로 출입구가 있는 이곳을 들어올 때는 어디로 들어왔는지 기억을 해놔야 하는데 저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파고다 한 바퀴, 파고다 두 바퀴... 저의 맨발은 보기 좋게 거무스름해지고 말았습니다. 몇 바퀴를 더 돌아 결국 출입구를 찾았고, 이어서 양말과 신발까지 찾고 파고다를 나갑니다. 들어올 때와 나올 때가 새삼 다르지만,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여유롭게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다가도, 일정에 쫓겨 급하게 이성을 찾게 되는 과정.


파고다에서의 깨달음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먼지처럼 사라지고, 눈앞에는 헤쳐나가야 할 현실이 거대하게 나타났습니다.


"맞아! 오늘 양곤에서 바간으로 이동하는 날이지! 그것도 야간버스잖아."


시간이 없었어요. 이대로 가다간 미리 예약한 버스도 놓치게 생겼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랩을 부르고 기다렸을 텐데 눈앞에 보이는 택시를 잡고 바로 숙소로 이동합니다. 한순간에 우리가 있는 곳은 서스펜스 영화의 배경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미션 1. 술레파고다에서 내린 나는 숙소로 전력질주해서 가방을 찾고 다시 술레파고다로 와야 함

미션 2. 동행을 다시 만나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택시를 타야 함

미션 3. 터미널까지는 1시간. 하지만 양곤의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넉넉잡아 터미널까지 1시간 30분. 버스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여. 그러므로 택시기사의 운전실력과 운이 따라줘야 함


저희는 과연 이 미션들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술레파고다에서 내려 숙소까지 5분 만에 돌파했습니다. 참고로 평소 15~20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습한 날씨덕에 땀이 한 바가지. 그리고 가방을 메고 다시 술레파고다까지 전력질주. 아니 전력경보(?)


그 와중에 배꼽시계는 정시를 가리키네요. 바로 무시. 그 순간 동행한테도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이어서 미션 2를 진행합니다. 한 시간을 가야 하므로 가격이 꽤 나올 거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근처에 있는 아무 택시기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목적지를 확인하고 곧장 택시에 탑승합니다. 이제는 운에 맡겨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구글맵은 목적지까지 45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무사히 바간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나의 희망을 깨는 택시기사의 한마디. "1시간 안에 절대 못 가."

도대체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요.


"무슨 소리야. 나 어떻게 해서든 가야 한단 말이야... "


"지금 차 막히는 거 봐봐. 이렇게 교통체증이 심하면 1시간 안에는 절대 못 가. 너 티켓 있어? 나 보여줘 봐."


아니 절대 못 간다고 해놓고, 티켓은 왜 또 보여달라는 지요. 제 동행은 이미 뒤에서 어플로 바간행 다음 버스를 알아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버스 좌석도 5석인가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습니다. 이렇게 우유부단하다 둘 다 놓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양곤에서 1박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택시기사의 한 마디,

"내가 버스 회사에 전화해 줄게. 기다려봐."


'전화를 해준다고? 전화하면 늦어도 되는 거야? 분명 버스에 탄 사람들이 있을 텐데 우리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모두 기다린다고? 이게 가능해? 이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저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저의 표정이 들켰는지 택시기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계속해서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됐어. 걱정하지 마. 그 버스 탈 수 있을 거야."


'아니 뭐라고? 이게 이렇게 해결이 된다고?' 여전히 믿을 수 없었어요. 택시기사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계속 문제없다고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운전에 집중. 우선 믿어보기로 했어요. 사실 별다른 대안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차는 계속해서 막혔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습니다.


택시기사는 지도가 안내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더니,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앞에 있는 차들을 추월합니다. 그렇게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제 손은 땀으로 이미 땀으로 한가득 젖어갔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인 버스정류장에 도착. 그것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있는 회사 앞까지 출발 15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교통체증을 감안하고 이 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베스트 드라이버 아닐까 봐요. 저희는 제주빠(고마워)를 연신 외치고 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임무를 마쳤다는 듯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잠깐 숨을 돌리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짐을 버스에 싣고 무사히 바간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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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의 양곤 서스펜스 영화는 이렇게 막이 내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름도 못 물어봤네요. 여유가 있었으면 이름도 물어보고 셀카도 같이 찍었을 텐데, 정말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그의 대가 없는 친절. 만약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버스시간에 맞게 도착하든 아니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 같지만, 그는 마치 자기 일인 양 적극적으로 알아보며 도와주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언젠가는 도움을 줄 상황이 생기니 그때 도움을 주면 되거든요.


하루 만에 정말 많은 사람과 순간들을 경험했어요. 그러면서 미얀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의 선순환으로 일상이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거 같습니다. 그 중심엔 쉐다곤파고다가 있고요. 신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믿음아래 모두가 하나처럼 도우며 살아갑니다.

저 또한 여행 중에 받은 선함을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라봅니다.


"그때 양곤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 이름 모를 쏘 카인드 베스트 드라이버 형님,

제주 띤바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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