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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날은 뭘 해도 안된다.

내 기분에 맞춰진 불쌍한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by 떼오 Theo
마지막 작별은 완벽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라보카에서 멋진 시간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완벽한 이별인 줄 알았다. 날씨와 눈앞에 보이는 풍경, 흥겨운 음악소리와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혼자 여행하는데 이보다 완벽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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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내주자.'

아쉬움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에서 짐을 되찾아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우버 어플을 켰다.


'아뿔싸!' 돈이 모자란 것이었다. 대충 계산해서 맞춘 돈이었는데 너무 딱 맞춰 버린 탓일까?

택시를 타면 20분의 거리, 걸어서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결국 돈이 되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중간에 내리고 말았다. 다시 외딴섬에 갇혀버리게 된 가난한 여행자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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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30분 정도는 걸어서 가자!' 그런데 거리도 거리지만, 20kg가 넘어가는 가방은 양쪽 어깨를 강하게 짇누르기 시작했고, 그 무게는 뜨거운 햇빛이 더해주었다. 그리고 공항으로 걸어가는 길은 흔히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활주로와 같은 곳을 지나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가야만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하지만 속으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결국 어떻게든 다 되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보딩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훗,,, 국내선은 30분 전이면 충분하지.' 여행이 길어지니 이상한 깡만 늘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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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있는 동전 탈탈 털어 둘세 데 레체 아이스크림까지.


무사히 푸에르토이과수 공항에 도착.

'분명히 푸에르토이과수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너무 조용한 공항.


'무사히'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곧바로 찾아온 위기.


몸이 지칠 때로 지친 상태이고, 돈도 없으니 사람이 급격하게 예민해지고 신경질 적으로 변하게 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공항에 있는 ATM을 찾아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ATM가 말썽이다. 카드가 계속 안된다고 뜨는 것이었다.


'왜 왜! 분명 지금까지 계속 쓰던 카드인데 왜 안되는 거야!!'


혹시 몰라 돈이 안 들어있는 안 쓰는 카드를 넣어봤는데 심지어 이번에는 카드를 먹어버린 것이었다.

'하...'


직원도 여기 담당자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미친 거 아니야..'


택시회사 측에 현금이 없으니 시내 쪽 은행에 가서 인출을 하겠다고 하고 우선 시내로 향했다.

'너무너무 힘들다.'


택시 창 밖은 보니 온통 정글이었다. 잠깐 잊고 있었다. 이과수에 왔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택시기사는 시내에 있는 은행에 내려주었다. 은행에 있는 ATM 조차 말썽이었다.

'아 진짜 뭐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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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내 사정을 말하고 와이파이 좀 잠깐 써도 되겠냐고 부탁한 뒤 동생한테 연락해서 다른 카드에 2만 원 정도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카드로 다시 하니 이제야 인출이 되었다. 우선 택시비는 해결.


급한 불을 끄고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니 카드가 계속 안 되는 이유가 돈이 없는 게 맞는 거 같다. 어플상으로는 돈이 있다고 뜨지만 보통 해외정산이 하루 정도 늦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른 카드는 되니깐 거기로 돈을 옮겨서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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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출하는 수수료가 아까워 남사오픈채팅방에서 원화와 달러를 교환해 줄 사람을 급하게 찾았다. 감사하게도 근처에 가능하다는 분이 계셨고 교환을 성공했다! 교환을 하면서 다른 조언들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되었다. 그 돈으로 다음날 이과수폭포에 갈 버스티켓도 구입했다.


부에노스에서 푸에르토외과수까지.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하나가 꼬이니 연속으로 다 꼬이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지난 여행동안 동행들과 같이 다녔는데 혼자 남겨지니 도와줄 사람도 없고 몇 배로 더 힘든 거 같다.

그래도 안전하게 이곳까지 오게 된 게 다행이다. 그래서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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