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모레노 빙하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빙하투어를 신청하는 것
모레노 빙하 투어는 빙하를 직접 걸으며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빙하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과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느끼는 것은 정말 다르다. 빙하 투어에도 종류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한 시간 반정도 비교적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미니트레킹'과 빙하 안에 있는 동굴과 크레바스 등 곳곳을 깊게 탐험할 수 있는 '빅 아이스 트래킹'이 있다.
둘째, 투어 없이 버스티켓만 구입하여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것
빙하투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모레노 빙하까지 왕복으로 버스픽업을 해주고 구경은 자유롭게 하며 된다. 빙하를 직접 밟아보지는 못하지만 여유롭게 산책로를 거닐면서 구경할 수 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두 번째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방법 선택. 사실 고민은 하긴 했으나 가격이.... 미니트레킹은 30만 원이 넘어가고, 빅 아이스 트래킹은 이에 두 배인 6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남미여행이 막바지로 다 달으면서 예산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눈물을 머묾과 투어는 포기... 빙하 위스키(투어를 하면 유리잔에 빙하를 넣어 위스키를 한잔씩 타준다) 한잔하고 싶었는데, 어쩌면 이거 때문에 하고 싶었을지도.
그렇게 버스 티켓을 예약하고, 야무지게 전날 점심도 준비했다. 돈도 아낄 겸, 마침 참치캔도 하나 남아 있어서 이걸로 참치 주먹밥을 만들기로 했다. 사실 이 참치캔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중간중간 만나는 한국분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음식도 공유하고, 또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분들에게 남은 음식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참치캔 하나가 내 가방에 들어오게 된 거 같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참치캔, 튜브고추장, 밥
끝이다. 밥을 하기 위한 쌀은 근처 마트에서 구입했다. 냄비밥을 뚝딱하고, 밥을 뭉친 다음 살짝 구멍을 내 그 속에 참치를 넣고 덮는다. 그리고 결들여 먹을 고추장을 함께 챙기면 끝. 정말 간단하다. 이렇게 만든 소중한 점심밥을 고이 모셔 두었다. 빙하를 보고 바로 피츠로이가 있는 엘찰튼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짐도 미리 싸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레노로 가는 버스시간에 맞춰서 숙소를 나섰다. 지난번처럼 주먹밥을 두고 나가는 일은 없었다. 전날 고이 모셔둔 이유다. 빙하를 보고 바로 엘찰튼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큰 짐은 티켓을 구입한 버스회사에 짐을 맡겼다.
모레노로 가는 버스가격은 1,200 ARS. 한국돈으로 약 16,600원 정도 하는 값이다. 당시는 더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왕복이고 버스에서 간단하게 가이드도 해주니 이제 생각해 보니 괜찮은 가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를 감상하는 다양한 코스들이 있었고, 코스에 따라서 예상시간도 달라지므로 돌아가는 버스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잘 선택해서 모레노빙하를 구경해야 했다. 버스를 놓치게 되면 모든 일정이 꼬여버린다. 여행 막바지가 되면서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하고 싶은 것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코로나의 여파가 크다.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남미여행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모레노 빙하 도착. 입장료는 800 ARS. 따로 내리지 않고 버스에서 인솔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한 시간. 빙하의 규모를 대충 상상할 수 있는 거리다. 그렇게 모레노 초입 도착. 속으로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가장 빠른 코스로 해서 빙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간 뒤 미리 준비한 주먹밥을 먹자는 대단한 계획을 생각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빙하가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선선하니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빙하조각들이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대체 어디서 내려오는 걸까? 조각들의 규모도 엄청난데 엄마 빙하는 얼마나 클까?'
가까운 거리로 가니 생각보다 빠르게 큰 빙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엄청난 스케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큰 빙하는 태어나서 처음 봐...'
'아이스 트래킹을 하면 저 빙하 위를 걷는다는 건데... 너무 무섭겠는데? 오히려 잘됐군.'
그때 귀속을 강하게 때리는 천둥소리.
천둥소리가 아닌 다름 아닌 빙하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빙하가 녹아 떨어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이걸 보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곳의 관광 포인트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환경오염으로 인해 기온이 올라가 빙하들이 녹아 없어지는 모습을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끝이 없어 보이는 빙하를 보니 자연의 위대함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 자연을 잘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건 그렇고, 이제 준비한 주먹밥을 먹어볼까?'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 비닐을 벗겨 마주한 반들반들한 흰쌀밥. 거기에 고추장까지 싹 뿌려서. 이게 바로 진수성찬이지. 빙하를 보며 먹는 주먹밥, '근데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너무 맛있어서겠지?'
슬슬 시간에 맞춰서 내려가야 했다. 길을 따라 쭉 가니깐 한 레스토랑이 나왔다. 기념품샵도 있고. 그런데 버스에서 제대로 가이드의 말을 듣지 못해 버스가 여기로 오는 건지 아님 내렸던 곳으로 오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려는데 점점 돌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느낌상 아까 그 레스토랑이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갔다.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커피를 먹으면서 몸을 녹이며 버스시간을 기다렸다.
몸이 너무 추워 밖으로 나와 햇빛을 좀 쐬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했다. 아니 불안한 마음에 저 멀리 있는 버스를 발견해서 뛰어가서 탔다. 그렇게 다시 엘 칼라파테로 돌아가 버스에서 저녁으로 먹을 먹을 엠빠나다까지 구입하고 엘찰튼 행 버스에 몸을 싣었다. 엘찰튼에 도착하면 아마 밤 10시쯤 될 것이다. 버스에서 숙소 예약까지 끝!
늦은 밤, 버스는 엘찰튼에 무사히 도착했고 버스터미널에서 겨우 잡히는 와이파이로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한 뒤 예약한 숙소를 찾아갔다.
우리 같은 트래커들이 많은지, 숙소에 짐만 맡기고 새벽 2시쯤에 나가서 트래킹을 하고 온 다음 1박을 해도 된다고 하셔서 새벽 2시까지 잠시 숙소 1층 휴식공간에서 눈을 붙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어째 점점 여행의 강도가 올라가는 느낌? 토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데 또 다른 트래킹이 기다리고 있다.
피츠로이 무사히 보고 올 수 있겠지? 우선 생각하지 말고, 눈 좀 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