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보면 볼수록 유진이 이 방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져갔다. 그녀는 꽃집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일했던 평범한 생활을 했었고, SP 그룹의 내부 자료와 회장의 개인적인 정보까지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하진은 유진의 노트북에 담긴 정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어릴 적 기억부터 노트북에 남겨진 내용들을 보며, 하진은 유진의 과거에 자신이 몰랐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듯했다.
유진은 단순히 꽃집과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 자료들을 통해 드러난 그녀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유진이 알고 있었던 것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둡고 깊은 것들이었을지도 몰라. 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하진은 유진이 노트북에 남긴 비밀들을 살펴볼수록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그녀의 진짜 삶을 몰랐는지 깨달았다. 어릴 적 기억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조차 어두운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진은 유진의 자료에서 SP 그룹과 연결된 인물들이 유진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과거와 관련된 기록들 속에서, 유진이 평범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어딘가 벗어날 수 없는 그늘에 놓여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진은 단순히 자신이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이 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었어. 어릴 적부터 그녀는 그곳에 있었고, 자신이 몰랐던 비밀과 싸우고 있었던 거야.’
하진은 유진의 과거와 SP 그룹의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이 방대한 자료가 단순히 복수심이나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진의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숨겨진 인연과 얽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유진, 네가 겪었던 모든 것을 끝까지 밝혀낼게. 그리고 이 배신감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찾겠어.’
하진은 유진의 삶에 담긴 비밀을 끝까지 추적하기 위해, SP 그룹과 그녀의 과거를 하나씩 밝혀내기로 다짐했다.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던 오후의 고요를 깨고 하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하진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쪽에서 민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인을… 잡았어요.”
하진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하가 겪고 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르며, 설마 진짜로 그 범인이 붙잡힌 건지 의심스러운 감정이 교차했다.
“정말인가요, 민하 씨? 그 사람이 누구예요?” 하진의 목소리에는 긴장과 동시에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민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그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났어요. 제가 계속 감시받는 것 같다고 느꼈던 이유가 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를 몰래 따랐어요. 그리고… 경찰에 신고했어요.”
하진은 민하의 용기에 놀라며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잘하셨어요, 민하 씨. 정말 잘하셨어요. 지금 안전한 곳에 계신가요?”
민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네, 지금 경찰서에 있어요. 그 사람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중이에요.”
하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민하 씨. 이젠 제가 가서 도와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민하가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이제 사건의 실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진이 도착한 곳은 민하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파출소였다. 그는 파출소에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민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소 창백한 얼굴로,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진은 민하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민하 씨, 괜찮아요?”
민하는 하진을 보자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눈빛에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네, 근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그 사람이 정말 저를 쫓아다니고 있었더니…”
하진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민하 씨. 용기 내서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이 사건을 더 깊이 파헤칠 테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한 경찰관이 다가와 하진에게 인사하며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방금 잡힌 사람은 민하 씨를 스토킹한 혐의로 조사 중입니다. 아직 조사 단계라 완전히 범인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민하 씨의 말이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범인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 중 한 명이었다. 민하는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의심하던 인물은 김수찬이라는 물리치료사였지만, 실제로 잡힌 범인은 병원에서 평판이 좋은 인물이었다.
하진은 민하의 말을 듣고 더욱 혼란스러웠다.
“정말 그 사람이 맞는 건가요? 평소에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민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요. 그 사람은 항상 친절했고, 환자들에게도 성실한 모습이었어요. 김수찬이 워낙 의심스러워서 그 사람을 주의하고 있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어요.”
하진은 잡힌 인물이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 깊은 의문을 느꼈다. 평소에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 어떻게 민하를 스토킹하고, 유진 사건과 연결될 수 있었을지 혼란스러웠다.
평소에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을지도 몰라. 민하가 그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치밀함을 증명할 수도 있겠군.’ 하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진은 병원의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나 그의 과거를 철저히 조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사건이 단순한 스토킹에서 끝나지 않고, 유진과 관련된 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진은 추가 수사를 위해 요양병원을 찾았다. 병원 내부는 어딘가 어수선해 보였고, 직원들 사이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진이 병원에 들어서자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직원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누군가는 그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듯 고개를 돌렸고, 또 누군가는 숨죽인 채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원에 들어온 경찰이 무엇을 조사하러 왔는지 알고 있는지, 그들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엿보였다.
하진은 가까이 있던 간호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여기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김수찬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간호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대답했다.
“아마 치료실 쪽에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병원 분위기가 좀 이상하죠? 저희도 많이 놀랐어요. 그 사람은 정말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진은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평판이 좋던 물리치료사가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직원들 모두가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진은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이 사건이 단순히 스토킹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직원들의 반응을 통해, 유진과 그 물리치료사 사이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병원 내에서는 작은 속삭임과 수군거림이 오가며 하진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경찰이 이곳에서 무언가를 파헤치려 한다는 사실에 어딘가 불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하진은 김수찬이 있는 치료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병원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유진과 물리치료사, 그리고 이 병원 사이에 얽힌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기 위해 그는 더 깊이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유진, 네가 남긴 흔적과 이 병원에서 숨겨진 진실을 반드시 찾아낼 거야.’
김수찬은 큰 체격과 다소 거친 인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외모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인상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거나 경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그를 쉽게 판단했고, 실제로 그의 행동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김수찬에 대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무례한 말투를 사용하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언행을 보이며 다른 직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김수찬 씨는 정말… 일할 때마다 주변을 긴장하게 만든달까. 사람들이 항상 조심스러워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으며 그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진은 그런 김수찬의 평판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행동이 실제로 그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유진이 이런 인물과 마주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진은 유진이 느꼈을 긴장감과 불편함을 상상하며 그가 사건과 어떤 식으로 얽혀 있는지 더 깊이 파헤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김수찬 씨, 같이 일하시던 물리치료사 이경한 씨와는 친하셨습니까?” 하진은 냉정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김수찬은 잠시 당황한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경한이요? 뭐… 딱히 친하다기보다는 그냥 일하면서 마주치는 정도였죠. 별로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조금의 경계심과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하진은 그의 반응을 예리하게 살피며 다시 물었다.
“이경한 씨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김수찬은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그 사람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잖아요. 서로 신경 쓸 사이도 아니었고요.”
하진은 그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감추려는 기색을 느꼈다. 단순히 직장 동료라고 하기에는 무관심을 가장하려는 듯한 말투가 이상했다.
“혹시 이경한 씨가 유진 씨와도 얽혀 있던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하진의 질문이 점점 날카로워지자, 김수찬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유진 씨? 그런 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 사람들 일이니 제 일은 아니죠.”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하진은 그의 답변에 확신을 가지진 않았지만, 더 깊이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수찬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