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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Nov 24. 2024

에피소드 16: 실마리를 찾아서 2

하진은 의자에 살짝 몸을 기대며 김수찬의 경직된 자세와 질문에 답할 때마다 시선을 피하는 태도를 관찰했다. 그의 속내는 분명히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더 밀어붙이는 건 효과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좋습니다.” 

하진은 다소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그럼 이경한 씨가 병원에서 일할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수찬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조심스러움과 꺼림칙함이 묻어 있었다.


“이경한이요? 뭐… 그렇게 친하진 않았어요. 그냥 같이 일하면서 얼굴 마주치는 정도였죠.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하진은 그의 반응을 예리하게 살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너무 조용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동이 있었습니까?”

김수찬은 탁자 위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주로 자기 일만 하고, 별로 나서지 않았죠. 그런데 항상 작은 수첩 같은 걸 들고 다니더라고요. 뭐에 그렇게 적는 건지, 항상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어요.”

하진은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수첩이요? 그 안에 뭐가 적혀 있는지 본 적 있으십니까?”

김수찬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절대 보여주지 않았어요. 항상 자기 몸에 꼭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 수첩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요.”


그 말이 끝나자 하진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단서가 번쩍 떠올랐다. 그 수첩은 단순히 그의 기록물이 아니라, 아마도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외에, 이경한 씨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던 적은 없습니까?”
하진이 다시 물었을 때, 김수찬은 잠시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리며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은… 밤늦게 직원 라운지에서 누군가와 크게 다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평소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확실히 화가 나 있더군요.”

“누구와 다툰 것 같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상대는 어둠 속에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이경한이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던 건 사실이에요.”

하진은 단단히 입을 다문 채로 김수찬을 바라보았다. 그의 대답이 완전한 진실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혹시 더 생각나는 게 있다면 꼭 연락해 주십시오. 

당신의 말 하나하나가 이 사건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김수찬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어색한 표정이었다. 그가 진실의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하진의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병원을 나서며 하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경한이 지니고 다녔던 수첩, 그리고 그가 만난 인물과의 충돌은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다시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모은 단서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집중했다.


화면에 떠오르는 데이터들 속에서, SP 그룹의 경영 문제로 인한 파벌 싸움에 대한 오래된 뉴스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하진은 별다른 생각 없이 기사를 읽던 중, 화면에 나타난 SP 그룹 회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이 얼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그의 머릿속에 낯익은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진은 사진 속 배경에 있는 장면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회장을 둘러싸고 질문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 속의 배경이 어딘가 익숙했다.


‘왜 이 장면이 이렇게 낯익지?’


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화면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기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의 출입문, 사람들의 위치와 건물의 구조까지도 어딘가 본 기억이 있었다.


그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다가, 익숙한 장소의 느낌이 강하게 떠올랐다.


‘이 장소... 분명 어디선가 봤어.’


곧바로 인터넷을 열어 검색을 시작한 하진은, 화면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숨을 멈췄다. 그 배경이 바로 한 재활 치료 병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병원이 유진이 자주 드나들었던 요양병원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재활 치료 병원... 설마 단순한 우연일 리가 없어.’
하진은 스크린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유진이 생전에 드나들던 요양병원, 그리고 그 병원과 연결된 재활 병원. 여기에 SP 그룹 회장과의 연관성까지. 이 모든 연결고리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유진이 이 병원과 SP 그룹 사이에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연결이 설명되지 않아.’


하진은 사건의 퍼즐 조각들이 점점 맞춰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이 흐릿했고, 직접 확인해야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진은 곧 결정을 내렸다. 재활 치료 병원을 직접 방문해야 했다. 거기에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 병원이 그 답을 줄 거야. 유진, 네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반드시 따라갈게.’


하진은 모니터에 떠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재활 병원과 SP 그룹 회장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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