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장비를 옆구리에 메고, 윤우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진은 그보다 한 발 앞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
고요하고 단단한 걸음이었다.
여느 정부기관처럼 차갑게 정리된 복도.
문마다 붙어 있는 사무실 번호, 형광등 아래 흐릿한 빛.
이곳은 누군가의 ‘과거’를 찾아주는 곳이어야 했다.
하지만 발걸음 하나하나가 왠지 무거웠다.
3층 끝, '해외입양인 기록정보센터'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 있는 문 앞에 다다랐다.
윤우는 문을 열기 전 잠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은 작은 숨을 내쉬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직원이 고개를 들어 그들을 맞았다.
"박서진 씨죠?"
"네."
서진이 짧게 대답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은 컴퓨터가 늘어선 안쪽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윤우는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훑었다.
누군가는 이곳을 ‘찾아줌’의 장소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 여기는 오히려 '찾을 수 없음'을 공인해주는 공장 같았다.
책상 위엔 수십 개의 파일이 널려 있었다.
파일 속 이름들, 그러나 그 옆 칸은 텅 비어 있었다.
출생지: 미상.
생년월일: 미상.
부모 정보: 없음.
존재했으나, 기록되지 않은 삶들.
서진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윤우는 그녀 옆에 앉았다.
직원은 조심스레 노트북을 돌려 보이며 말했다.
"박서진 씨 관련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몇 줄의 간단한 데이터가 떠 있었다.
이름: 박서진
생년월일: 불명
출생지: 불명
입양 국가: 덴마크
서진은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우는 그녀 옆에서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기록은 없나요?"
윤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당시 기록 자체가 부실했어요.
입양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출생지나 부모 정보를 아예 삭제하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무표정했다.
"어떤 조작이 있었던 거죠?"
윤우가 다시 물었다.
"아이를 고아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부모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고 기록하거나,
출생 병원을 다르게 적거나,
심지어 생년월일을 바꾸는 일도 흔했어요."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저희도 데이터화가 거의 불가능했어요.
수십 년 전 기록들이 워낙 조잡하고 왜곡되어 있어서요."
서진은 천천히 모니터를 닫았다.
손끝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윤우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알았다.
서진은 지금 또 한 번 버려진 것이다.
아버지도, 국가도, 사회도—
그리고 이제는 기록마저 그녀를 버렸다.
그녀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가장 기본적인 증거마저,
누군가의 서류 조작 몇 번으로 지워진 것이다.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생.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부정이었다.
서울의 3월은 아직 서늘했다.
서진은 건물 앞 작은 광장에 멈춰 섰다.
햇빛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온기라고 부르기엔 너무 멀었다.
윤우는 말없이 그녀 옆에 섰다.
한참 후, 서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태어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윤우는 고개를 돌렸다.
서진의 얼굴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무너짐이 있었다.
"그냥, 어딘가에 있다가,
어딘가로 보내진 것 같아요."
서진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군가의 딸도,
누군가의 아이도 아니었던 시간."
그녀의 목소리는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고,
분노에 떨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알아온 슬픔을 확인하는 듯한 말투였다.
윤우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은… 살아 있었잖아요.
지금도 이렇게."
서진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너무 짧았다.
"살아 있다는 게요."
"때로는 더 고통스러워요."
윤우는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 그는 이야기를 남기는 일을 해왔다.
목격자였고, 기록자였고, 관찰자였다.
하지만 서진을 보면서 그는 깨달았다.
기록하지 못하는 고통.
기록할 수 없는 삶.
기록할 수 있었어야만 했던 이름들.
그 모든 것을 지켜본다는 건,
단순한 취재가 아니었다.
책임이었다.
부끄러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명감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끝까지 남겨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서진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수천, 수만 명의 이야기라 해도.
그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서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윤우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 걸었다.
둘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조차 서로를 거스르지 않았다.
지워진 시간 속에서,
남은 두 사람.
사라진 기록 속에서도 살아 있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이 걸음은 의미가 있었다.
윤우는 화면속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