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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Nov 01. 2022

전통은 지켜야 하는가, 이어야 하는가

전통예술을 잇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

한복은 우리나라의 전통 복식이다. 현대에는 일상복의 개념보다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예복으로서 기능한다. 그렇다면 한복은 박물관에 보관되는 옛 복식에 한정되거나, 명절이나 결혼식 때 입는 예복으로서 이어지면 충분할까? 우리가 한복을 대하는 태도는 한복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예술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이어진다. 우리에게 전통은 일상과 동떨어진 ‘이벤트’다. 국악기 체험은 하러 가도, 이어폰으로 국악을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듯이. 전통은 즐기기 위한 대상으로 수용되지 않으며, 일상적으로 향유할 만한 예술적 대상이 아니다. 국악은 재미없고 한복은 불편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전통이란 그저 고증만이 중요한 가치이며, 이것은 지루하다는 감상과 결부된다.


하지만 전통은 보존해야 하는가, 보전해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복원하고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제한 것마냥 한 치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고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은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보존하기 위한 전통과 변화하기 위한 전통을 구분해야 한다. 흐르지 않으면 썩지 않는가. 우리는 어떻게 더 많은 현대인들이 전통을 향유할 수 있을지, 그 현대화와 대중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전통예술을 전수하는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니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 모두가 기억하고 고민해보아야 하는 문제다.




한복의 정통성이란


청와대 한복 화보에 포함된 일본 디자이너 류노스케 오카자키의 작품, 이미지 출처: VOGUE


지난 8월 청와대가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패션화보 촬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논란이 커진 것은 청와대 개방이라는 정치적인 문제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패션 작품에 집중해보자. 문화재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복에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한복의 홍보 효과를 의도했다고 한다. 청와대라는 장소의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이 화보촬영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의 새로운 디자인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청와대의 공간적 의미에 견주었을 때, 한복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작품이 있다는 점과 심지어 일본 디자이너의 작품이 포함되었다는 점 때문에 지탄을 받았다. 즉, 논란이 되는 것은 소개된 작품들이 보여주는 ‘한복에 대한 정통성’이었다. “이게 한복이 맞냐”는 질문들이 곳곳에서 떠올랐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복식사 박사 김여경 교수는 YTN 라디오에서 ‘한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복식 형태로 나타났고 그 범주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복에 대한 정통성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허용 기준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복에 대해 논의하고 판단할 만한 관심과 지식을 갖춘 대중인가?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한복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장소에 비해 작품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니라, 이 촬영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한복에 대한 고민이 미흡해 보인다는 점이다. 한복의 어떤 가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인지, 한복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에 집중해야 하는지, 우리가 한복을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구성해야 하는지. 한복의 현대적인 해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답변이 작품에서 드러나야 했다. 그저 작품의 외관이 주는 ‘한복다운 느낌’을 추구하며 화보를 구성했기 때문에 한복 작품의 정통성이 논란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과연 한복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고, 우리는 어떤 가치를 이어야 할까?



일본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전통 복식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다수 배출한 일본은 자국의 전통 복식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어떤 해석을 도출했기에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일본의 유명한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세 디자이너가 주목한 일본 전통복식의 특성을 살펴보자.



1) 레이 카와쿠보


꼼데가르송 2012 F/W 레디투웨어 컬렉션 / 이미지 출처: Vogue


레이 카와쿠보는 서양 복식의 여러 고정관념을 파괴했다. 카와쿠보가 도전한 서양복식의 관습 중 하나는, 옷을 입체적으로 재단하고 봉제하는 입체구성 방식이었다. 서양 복식은 몸의 형태를 재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따라서 코르셋처럼 몸의 형태를 과장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동양 복식은 평면으로 제작해서 몸에 걸쳤을 때 비로소 형태가 나타난다. 즉, 몸의 형태에 따라 실루엣이 형성되는 특징을 가지며, 몸과 옷 사이에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레이 카와쿠보는 평면구성 방식을 이용해 몸과 옷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투영했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2)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 2022 S/S 레디투웨어 컬렉션(좌), 2016 리조트 컬렉션(우) / 이미지 출처: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 또한 평면으로 옷을 만드는 전통 복식의 특징에 주목하였으며, 전통 수공예인 종이접기에서 착안한 주름(pleats)과 접목하여 디자인을 전개했다. 미야케의 주름은 몸의 형태와 움직임에 따라 옷의 모양도 함께 움직이며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이를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이 몸을 따라 움직이는 동양 복식의 관점을 보여준다.



3) 요지 야마모토


요지 야마모토 2021 S/S 레디투웨어 컬렉션 (좌), 2023 S/S 레디투웨어 컬렉션 (우) / 이미지 출처: 요지 야마모토


요지 야먀모토는 대칭, 균형, 정형성이 중시되는 서양 복식의 원칙적인 구조를 거부했다. 야마모토는 두르기, 걸치기, 메기 등의 다양한 착장방법을 통해 비대칭적이고 비구조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여기엔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이 담겼다. 요지 야마모토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통해 서구 복식의 틀을 깨고 일본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 디자이너들의 공통점은 서양 복식의 관습적인 규칙에 도전했다는 것과, 이를 위해 일본의 전통 복식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예술의 시각적인 재현에만 초점을 두지 않았고, 전통 복식에 담긴 몸과 옷에 대한 가치관을 현대복식에 투영했다. 동시에 서양 복식과의 성공적인 결합을 고민함으로써 현대패션의 가능성을 확장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통은 어떻게 이어야 하는가


출처: 텀블러, @estudioartefacto


국내에도 한복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차용한 디자인은 많다. 전통 소재의 특성을 살리거나, 단청과 같은 전통 무늬를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풀어낸 브랜드들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한복의 다양한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주목했던 일본 복식의 전통적 가치는 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일본의 디자이너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 3국 중 먼저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문화적 홍보의 시점을 선점했던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평면구성’이라는 동양 복식의 차이점을 먼저 제시했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보기에 굉장히 이색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인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점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접근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레이 카와쿠보,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는 일본 전통복식의 특성을 파고들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접근방식으로 현대복식과의 절충된 지점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 기존의 서양 복식이 가진 한계를 탈피하고 현대패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한복도 이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한복스러움'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복이 전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풀어내는 작품이 필요하다. 한복 고유의 정체성, 사상적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것은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복에도 전통적으로 몸을 바라보는 시각, 몸과 의복의 관계에 대한 정의,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 녹아있다. 한국 전통 복식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복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에, 금박투성이에 페티코트로 모양을 잡는 대여한복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수용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전통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옛 것 그대로의 모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해체함과 동시에 새롭게 다시 탄생시킬 때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 임은혁(2011)


‘전통’이란 우리만의 색을 찾을 수 있는 문화예술의 원천이다.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조금 더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기 위해, 전통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통적 가치를 현대의 방식과 접목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나아가 기존의 현대적인 방식까지도 뒤집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너무 고루하지 않으면서, 너무 낯설지도 않은 지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끊임없는 실패와 수용의 과정을 통해 이 시대의 우리가 잇는 전통의 모습이 그려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에 앞서, 한복 그리고 전통예술에 대해 우리 모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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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연, 이지은, 이인성, 「일본 디자이너 컬렉션에 나타난 에스닉 이미지 - 이세이 미야케와 요지 야마모토의 디자인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생활과학회 제15권 제5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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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 양숙희, 「현대 패션에 나타난 주름의 조형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복식학회지 제57권 제1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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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혁,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과 복식에 관한 전통적인 시각 비교」 한국복식문화연구 제19권 제3호, 2011

조정미,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의 서구 패션계 진출 전략에 대한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제24호, 2008

주도경, 「한복의 재전유와 전통성 - A 한복동호회 사례를 중심으로」, 2017,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Danielle Whitfield, “Rei Kawakubo: reframing fashion”, NGV (2019)

“"이게 한복으로 보여?!" 청와대 패션화보 논란, 전문가의 의견은”, YTN 라디오 (2022.8.29)



이 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안티에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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