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한라산에 가는 날이었다. 어리목 탐방로로 올라 윗세오름을 찍고 영실 탐방로로 내려올 예정이었다. 사촌동생이 관음사 탐방로와 성판악 탐방로에 비해 어리목-영실은 수월하다고 귀띔해주어서 아주 편안히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이건 아주 단단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이 연달아 있었다. 내가 한라산을 얼마나 얕보고 있었냐면, 우선 아이젠이나 스틱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운동화로 가뿐히 오를 수 있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동산으로 여긴 셈이다. 사촌동생 덕분에 각종 등산장비를 갖출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젠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파츠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았다. 추위만큼은 많이 타는 체질 덕분에, 내복에 발라클라바까지 겹겹이 껴입은 건 무지 잘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어리목-영실’ 코스라고 해서 오르기 쉬울 줄 알았던 것. 어리목 코스는 초입부터 끝없이 경사진 길목만 나왔다. 사재비 동산까지만 난이도가 높다고 들어서 사재비 동산까지만 꾹 참고 걷겠다 마음 먹었는데, 사재비 동산에서부터 윗세오름까지 오르는 길도 매우 힘들었다. 심지어 내리막길인 영실 탐방로는 더 고된 시간이었다. 남쪽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 눈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아이젠도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가파른 절벽을 곁눈질하며, 밧줄을 생명줄 삼아 조심조심 내려갔다. 덕분에 발바닥이며 종아리며 온 몸에 힘을 주어 진이 빠졌다. 한라산은 내게 등산의 고됨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1. 어리목
이제 엄살은 그만 피우고 내가 감사히 눈에 담았던 영광스러운 절경을 기록해보겠다. 우선 어리목 탐방로는 초입부터 눈이 가득가득 쌓여있었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아름다운 설경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초입에는 이파리 하나 없고 얇게 키만 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었다. 수종은 모르겠다. 이파리가 없는 걸 보니 활엽수일까? 수직으로 그어진 나무들 사이로 아침의 햇살이 비쳤다. 계곡을 하나 지나쳤는데, 큼직하고 동그란 바위들 위로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올록볼록한 모습이 귀엽고 푹신한 아이스크림 같았다.
눈이 깊게 쌓여있었다. 우린 땅 위로 30센티미터는 올라 서있는 듯했다. 정리된 탐방로 옆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는데, 스틱을 내리꽂으면 푹푹 들어갔다. 탐방로도 원래는 수천 수만 개의 계단만 쭉 이어진다는데, 계단을 집어삼킨 상태로 단단히 다져진 눈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이젠 없이는 기어가야 하는 생김새였다. 그마저도 끝없이 이어지는 경사로라, 수없이 쉬는 시간을 가졌다. 걸음을 멈출 때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서 물도 마시고, 초콜릿도 까먹고… 등산의 묘미를 알뜰히 챙겼다.
이파리 없는 날씬한 나무들 사이로, 무성한 가지 위에 눈을 잔뜩 짊어지고 있는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침엽수림 같아보였고, 눈의 무게 때문에 가지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마녀의 나무가 손바닥을 펼치고 시무룩해진 모습이었다. 하얗고 무겁고 치렁치렁하고 부피가 큰 드레스를 입은 사람 같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높은 나무들이 군집해있었다.
2. 사재비 동산
사재비 동산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빽빽하던 나무가 듬성해졌다. 이파리 없는 활엽수는 줄어들고 둥글게 펼쳐진 침엽수만 보이는 듯했다. 가지마다 두터운 눈덩이를 매달고 있었는데, 횡으로 그어진 바람결이 보였다. 열심히 저은 휘핑크림을 묻혀놓은 것 같았다. 지난 눈보라를 증명하는 드문 풍경에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남겼다.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면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 더 넓게 보였고, 햇빛도 설경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설맹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더니, 그 눈부심을 이제야 파악했다. 눈이 차지하는 면적이 많아지는지 점점 풍경이 하얘졌고, 오전의 햇살은 채도가 높고 선명한 덕분에 눈이 더 반짝이는 듯했다.
탐방로가 완만해지니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남겨둔 그림과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곳에 스틱으로 그은 듯했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했던가. 눈밭 위에 남긴 이름이 무엇이 특별할까 싶지만, 영구히 남는 곳에 끄적인 낙서가 아니란 점을 다행으로 여겼다. 어쩌면 지금 이때만 존재할 눈이기에 등산의 찰나를 기록하기에 더욱 적합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이상하게 완만한 탐방로가 더 힘들었다. 사재비동산만 지나면 편하다더니 난 사재비동산 이후부터가 더 힘겨웠다. 다리에 힘을 주기가 어렵고 버거워 자꾸만 멈춰 쉬고 싶었다. 긴장을 풀자니 오르막이긴 하고 빠짝 근육에 힘을 주자니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근육을 긴장시켜야 고난을 수용할 만한데, 힘을 세게 줄 만한 난도가 아니라서 작은 고난이 더 어렵게 다가왔나보다. 오, 이건 왠지 인생의 가르침 같았다. 각오 없이 마주한 낮은 장벽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반전이야말로 흔한 굴곡의 전개다.
3. 만세동산과 윗세오름
만세동산을 지나 윗세오름으로 올랐다. 이제 제주 시내와, 바다와, 낮게 깔린 구름이 한눈에 담겼다.공교롭게도 얇은 구름띠가 하늘과 바다 경계에 위치해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땅을 제외하면 오로지 푸른 정경이었다.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제주도민 분들은 눈이 오고 난 다음이면 항상 한라산에 오른다고 했다. 집 근처에 이런 산이 자리하고 있다니 풍족하신 분이다. 고도가 100미터 높아질 때마다 바위가 나왔다. 해발 1600미터, 1700미터… 많이들 해발 고도 바위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복의 즐거움이었을까, 성취의 즐거움이었을까? 후자이길 바란다.
이제 나무의 개수는 더욱 적어졌다. 키가 작은 모든 식물들은 눈에 파묻힌 덕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없었다면 하얀 민둥산으로 보일 듯했다. 정오에 다가가면서 해는 머리 꼭대기에 떠 있있고, 하얗고 하얀 풍경은 더 눈부시게 빛을 반사했다. 뒤돌아보니 사람들이 점처럼 보였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음을 생각하니, 많은 발걸음을 거쳐 현재에 다다른 것이 뿌듯했다. 이렇게 작은 발걸음을 착실히 모아야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지나온 거리를 굽어볼 수 있을 텐데, 난 보통 커다란 발걸음 몇 번으로 해결하려 들었다. 노력은 하나 동시에 나태하므로, 게속 걷긴 하면서 걸음걸이가 불성실한 셈이다. 급할 것도 없는데 조급해하고, ‘해치워버리겠다’는 자세로 임했다. 요즘 정말 좋아하는 정희진 작가님이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라는데, 내가 바라온 ‘해치움’이란 결과에만 목적을 둔 자세였다.
화구벽이 가까이에서 보였다. 숯 덩어리 같은 질감의 바위를 엎어놓은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올랐던 브로모 화산과 생김새가 조금 비슷했는데, 둘 다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특징이다. 누가 세로로 빗어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화산이라는 정체성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윗세오름까지만 오르지만, 다음에는 꼭 백록담까지 오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는 주기적으로 운동해서 근력과 유연성을 좀 더 늘린 상태여야 할 것이다… 아마 봄이나 여름에 다시 한번 올라야 할 듯하다. 애인은 올라갈수록 식생이 달라지는 모습이 확연하다며 재밌어했고, 사촌동생은 분화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철쭉 군락이 화려했다고 했다. 난 이번에 설경을 즐겼지만, 다음엔 산색을 즐기고 싶어졌다.
윗세오름에서는 컵라면과 전투식량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고, 열중해서 식사했다. 산행의 목표에 다다랐기 때문일까, 단순히 땀 흘린 육체 때문일까. 그저 꿀맛이었다! 이 날의 나에게 윗세오름은 정상이었다. 정상하면, 어렸을 때 읽었던 ‘TV 동화 행복한 세상’의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와 아들의 등산 이야기였는데, 정상을 코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려버리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우리의 목적은 산을 누리고 걷기 위해 온 것이지, 정상에 다다르기 위함이 아니라고 답했다. 목적지에 매몰된 나머지 과정을 놓치지 말란 뜻이었던 것 같다. 나도, 산행의 목적을 이룬 후라서 식사가 맛있었다고 적었다가, 그 이후에 이어진 영실 탐방로의 절경이 떠올라 서둘러 지워버렸다. 나의 등산 또한 산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4. 영실
영실 탐방로는 절벽 덕분에 경치가 아주 빼어났다. 한라산 탐방로 중 아름답기로 제일간다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멀리엔 서귀포의 전망이 펼쳐져 있고, 가까이엔 영실기암이 펼쳐져 있다. 깎아지른 듯 날카롭게 자리한 병풍바위도 근사했지만, 난 산의 지형에 시선을 뺏겼다. 옷 벗은 나무 덕분에 산의 생김새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투박한 붓으로 거칠게 그린 듯한 그림체가 흰 눈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산과 절벽의 웅장함에 감탄만 내리 내뱉으며 하산했다.
영실 탐방로의 끝자락, 완만한 등산로에 울창한 나무가 숲을 이룬 곳이 기억에 남는다. 날씬하고 키 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곳이었다. 나무의 기둥과 가지의 한쪽 면에는 흰 눈이 세로로 붙어있었다. 다른 등산객들이 우릴 앞질러간 덕분에 적막을 누릴 수 있었다. 가끔씩 들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 나무 위에서 눈이 녹아 물방울이 또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나무 사이사이를 비춰 고요한 분위기를 더했다. 동글동글한 바위 위로 눈이 쌓인 구불구불한 모습이 귀여웠고, 그 아래로는 물이 졸졸 흘렀다. 하산 과정이 제일 고되었는데, 이 숲에서의 시간만큼은 천천히 지나가길 바랐다. 다음엔 영실 탐방로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공간에서 오전의 고요는 어떨지 궁금하다. 산행의 마지막이 평화로워서 허벅지는 비명을 지르는데도 아쉬움이 뚝뚝 흘렀다.
어디든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높고 깊은 자연을 보고 와야 하는 듯하다. 산 하나 오르는 데에도 7시간이 걸리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어봐야 겸손을 떠올리고 나 자신의 하찮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한라산 속에 깊이 발을 내딛어본 후에야, 운동화로는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을 실감했다. 어디선가 경외를 모르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가 우리 삶의 태도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언제든 나를 집어삼킬 수 있는 자연을 주기적으로 보아줘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껏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만져왔는가. 축하를 위해 꽃을 꺾고, 허기를 위해 동물을 죽이고, 일상의 가동을 위해 연료를 태우고 오염물질을 내뿜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방만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여길 것이다. 분명 전통문화를 배울 때 교과서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와 공생을 강조했던 것 같은데, 실생활엔 찾아보기 힘든 인식이다. 미래에 시선을 쏟은 나머지, 과거의 가치는 외면하게 된 것일까.
그런데 한편 내 존재의 하찮음으로 오히려 위안을 얻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려 끙끙대며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 이 커다란 자연에서 조금씩 각자의 할 일만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위안. 현생이 벅차다는 생각이 들 때 자연을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말이다. 나 한 명의 삶을 어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나 한 명의 삶을 어쩌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듯한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잘하지 못 해도 괜찮고, 그저 꾸준히 일상의 반복을 헤쳐나가면 된다는 안도. 욕심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평안.
여러모로 도시의 삶은 자주 빠져나와줘야 함을 느낀다. 물질과 성과라는 좁은 시야에 갇히기 마련이고, 사람과 일하고 사람과 마주치고 사람을 상대하면서 우리가 세상의 전부라 착각하게 되는 듯하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가 스스로를 다그치게 만들고, 은근하고 집요하게 예외를 통제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삶의 양식과 관례와 의무와 편견… 우린 오랫동안 학습했고 답습했다. 이번 등산은 내면과 외부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