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시작이었다. 이 책은 모든 인간의 처음, 난자와 정자의 만남에 대한 통념부터 뒤집고 시작했다. 정자들의 적극적인 결투가 아닌, 난자의 능동적 선택이었다는 인간의 탄생 이야기. 이 책의 첫머리는 우리가 우리의 시작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통념을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들추었다.
X는 여성, Y는 남성을 결정한다는 성 염색체의 이분법적 구분도 사실과 달랐다. 남녀 지능의 우열과 능력 차이를 야기한다는 뇌의 성차도 실제로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내가 알았던 과학의 일부는 편파적이었다. 나처럼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에게 과학지식이란 의심해본 적도, 의심이 가능하다고 여긴 적도 없는 절대적 지식이다. 그런 지식을 뒤집어버린 것은 너무도 통쾌한 일이었다. 이 책은 과학에 무지한 나도 감히 과학을 의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절대적인 객관성이란 과학의 세계에서도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질문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과학은 객관성이란 환상에 현혹되기 가장 쉬운 분야가 아닐까.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어떤 주장과 연구 결과는 당연히 주관적일 수 있음에도 객관적 지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아주 획기적인 연구도 통제하지 못한 변수 또는 실수를 포함할 수 있었다. 또는, 후속 연구로 전혀 다른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결과, 어떤 과학 지식은 유명한 신화처럼 대중의 뇌리에 찐득하게 박혀 있다. 둘째, 과학도 사회의 일부라는 것이다. 사회에 강하게 깔린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실험이 설계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과학 지식이 성립되고, 과학 지식은 사회적 고정관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과학을 연구하는 주체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또, 과학이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논의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과학은 여성이 서 있는 불안정한 위치를 다른 각도로 비춰주었다. 예를 들어, 장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여성의 폭식과 구토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덕분에 누군가는 신체적 이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몸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정자 냉동보다 난자 냉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젊은 여성의 가임력을 강조하는 사회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인공지능과 비서로봇의 형태와 목소리를 통해 선명한 성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렇게 과학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를 촉발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연구가 뻗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적극적인 대안보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과학의 통념을 뒤집었다는 사실만으로 몹시 놀라워하고, 앞으로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가능하다는 전망에 감탄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란 걸 알기 때문에, ‘입문서’의 조심스러움을 이해한다. 다양한 기조의 페미니즘을 아우르기 위해 뾰족한 주장은 잘라내었을 책임감을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가님의 그 다음 책에서 더 깊고 단호한 문장을 마주할 거라는 기대감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