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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Sep 22. 2020

쓰레기 없이 만든다

제로 웨이스트 패션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제 전공은 의상학과입니다. 반전은 없습니다. 특이사항이라면 복수전공으로 패션을 배웠다는 정도일까요. 그래도 다른 학생들과 다름없이 실습수업을 들었고, 졸업작품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법을 배우는 4년 동안 패션학도가 버리는 쓰레기들은 어마어마합니다. 하나의 티셔츠를 만드는 데만 해도 제도 종이와 자투리 천이 쏟아져 나옵니다. 과제하느라 찌든 학생들이 자원을 아낄 생각이나 여력이 있나요. 실습실은 하루도 빠질 날 없이 원단 쓰레기들이 가득가득 나뒹굽니다. 학생들이 일찌감치 문제점을 깨우칠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다룬다면 참 좋겠는데요. 실상은 그저 아무렇게나 패턴을 그리고 자르고, 남는 종이나 천은 뭉텅이로 버립니다.


그뿐인가요. 공부라는 이름 하에 동대문에서 잔뜩 사냥해오는 소재 샘플이 있습니다. 스와치라고 부르며, 색깔별로 아주 예쁜 소재들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수첩처럼 찝혀있습니다. 소재들이 예뻐서 스와치를 보면 정말 쓸모없는 수집욕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많으면 많을수록 과제를 진행하는 데 선택지가 많아지니까 한번 받아올 때마다 두 세 봉투 한 가득입니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네다섯 장의 큼지막한 쓰레기봉투로 스와치 조각들을 정리하느라 고생이었습니다. 네, 저는 3년 동안 많은 똥을 싸왔네요..

 

숭인동 한 봉제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천 조각. 도준석 기자(서울신문)

한 기사에서는 강서구 한 지역에서만 나오는 원단 조각 쓰레기들연 600톤에 이른다고 합니다(정기창 기자). 제가 여러 글에 걸쳐서도 말씀드렸듯 옷은 그 자체로도 쓰레기가 되어 문제인데, 만드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쓰레기들이 나오네요. 옷을 생산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양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옷 하나가 차지하는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따진다면 얼마나 될까요? 과장 아주 조금 보태서 샤넬백 뺨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쩌면 과장이 아닐 수도.




그래서 오늘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는 '제로 웨이스트'입니다. 제로 웨이스트는 'Zero-waste', 즉 낭비가 없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떡볶이 포장해올 때 다들 락앤락통 하나씩 들고 가서 싸오죠? ^_^ 장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 들고 가구요. 이게 바로 제로 웨이스트입니다.


이렇게 생활 면면에서 많은 분들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계시는데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제로 웨이스트를 고민하시는 분이 많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제로 웨이스트 패션은 퀼트처럼, 쓰고 남은 천 조각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업사이클링이죠. 초록 창에 검색해보니 퀼트 가방, 퀼트 이불 등등 손재주 뛰어나신 분들은 자투리 천을 활용해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시더라구요.


이렇게 쓰고 남은 소재를 다시 활용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에는 '큐클리프'가 있습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소개드린 바 있는데, 쓰고 남은 다양한 소재를 업사이클링해서 여러가지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양한 업사이클링 워크숍을 진행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인지 운영하지 않네요. 아쉽습니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원단 조각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설계된 옷은 어떨까요? 하나의 옷을 만들 때, 우리는 여러 천 조각을 이어붙여 만듭니다. 팔 조각, 몸통 뒷부분 조각, 앞부분 조각 등등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그 조각에 맞춰서 원단을 잘라 만듭니다. 이 조각들을 패턴이라고 하는데요, 몇몇 디자이너들은 의류 제작 과정에서 나오는 많은 쓰레기들을 눈여겨보곤, 원단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패턴을 고민했습니다. 사각형의 원단 한 장이 있다면, 그 원단을 최대한 사용해서 낭비되는 원단이 없도록 옷의 조각을 이리저리 배치하고 설계한 거죠.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옷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로 웨이스트의 방식으로 옷을 생산하는 두 디자이너님의 브랜드를 소개하려 합니다.


1. 파츠파츠(PARTsPARTs)
PARTsPARTs 2019 F/W Collection


임선옥 디자이너님의 브랜드입니다. 네오프렌이라는 한 가지 소재를 활용하여 사용하는 원단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올이 풀리지 않는 네오프렌 소재는 끄트머리를 마감하는 단계를 건너뛰어 마감 단계에서 나오는 자투리를 아낄 수 있고, 바느질이 아닌 접착을 통해 원단을 연결하는 방식을 고안해내 시접으로 사용되는 원단과 실을 아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판과 뒷판, 칼라 등등 최대한 효율적으로 패턴을 배치하여 원단이 남지 않도록 사용합니다. 환경적 가치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특유의 공간적인 실루엣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개인적으로 너무 예뻐서 가져와봤습니다. 작품: 임선옥, '네오 모던', '한글, 패션을 만나다' 展 (국립한글박물관)


2. 수미애(Suumié)

두 번째 브랜드는 '숨 워드로브'라는 스타트업에서 론칭한 '수미애'라는 브랜드입니다. 얼마 전 이 브랜드를 우연히 발견하고 지금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수미애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가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또 다른 독특한 가치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소재와 연결되는데, 독특한 실루엣을 형성하는 이 소재는 바로 해녀복 소재입니다.


김진주 대표님은 수미애를 '해녀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 소개합니다. 여기서 '해녀 정신'이라는 키워드가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바 있는데, 그중에서도 해녀 정신이 담고 있는 지속가능성에 눈길이 갑니다. 해녀는 장비 도움 없이 스스로의 호흡으로 물 속에 머물며 해산물을 채취하기 때문에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따라서 최대 작업 시간, 채취 가능한 해산물의 최소 크기 등을 정해서 과도한 채취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자원만 자연에서 얻는 환경친화적인 어업이죠. 무분별한 양식과 그에 따른 각종 해양 및 토양 오염, 그물과 같은 어업 폐기물로 인한 해양동물의 죽음 등의 환경문제를 떠올리니 더더욱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수미애는 해녀정신의 지속가능한 가치와 연결하여 제로 웨이스트의 방식으로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입니다. 환경적 가치뿐만 아니라, 해녀복 소재는 아주 튼튼하고, 특유의 광택이 참 시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네요. 작년에 설립된 따끈따끈한 브랜드인데, 앞으로의 성장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환경적 가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선도하는 분들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요. 그 고민이 참 값지게 느껴집니다.


혹시 조각보라고 들어보신 적 있나요? 우리 선조들은 옷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들을 모아뒀다가 조각조각 이어서 보자기를 만들다고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천이 귀해서 작은 천 조각이더라도 쉽게 버리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 버린다는 행위가 얼마나 쉬워진 건지 반성하게 됩니다. 자원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고 아낄 줄 알았던 그때의 알뜰살뜰한 마음을 우리도 본받아야겠습니다.





참고자료

정기창, "자투리 원단도 훌륭한 '자원'입니다." 코리아 패션+텍스 뉴스, 2014년 7월 18일

"제주해녀문화", 한국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와 유산. http://heritage.unesco.or.kr/%ec%a0%9c%ec%a3%bc%ed%95%b4%eb%85%80%eb%ac%b8%ed%99%94/

이윤희, "롯데면세점, '제주 지역 청년기업 & 지역 상생 프로젝트' 온라인 데모데이 개최", 복지연합신문, 2020년 9월 9일.

"한 장의 원단으로 옷을, 파츠파츠" 행복이 가득한 집, 2019년 10월 (파츠파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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