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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Apr 16. 2021

굳이 애쓰진 않을게요

시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기

화기애애한 대화 중 배우자가 쏘아 올린 한 마디,

“생각해봤는데, 이번 어린이날에는 선물을 사서 주지 말고 직접 선물을 고르게 하는 거 어때?”

사이좋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배우자에게는 다섯살 난 조카가 한 명 있다. 연애 때부터 사진을 통해 간간히 보아왔고 결혼 후에는 명절 때마다 일 년에 한, 두 번씩 보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같이 있으면 그냥 피곤하기만 하다.


시가 단톡 방에는 조카의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뭐라고 답을 할까 고민을 하다 결국 이모티콘 하나 정도로만 답을 한다.

그냥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가 조카에게 느끼는 묘한 질투심도 무시할 수 없다.

결혼 후 시부모님이 내게만 관심을 가져주길 원했지만, 한창 예쁠 때의 조카와 있을 때면 나는 열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좋은 티를 숨길 수 없는 시아버님은 우리 부부와 같이 있다가도, 갑자기 조카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조카를 향해 뛰어간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정서적으로 친밀하건만, ‘아이’라는 것은 블랙홀 같다.

첫 손주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무법자 같은 존재다.


나는 혼자 몰래 마음속으로 외친다.

“빨리 커서 사춘기가 되었으면.”




내가 아는 배우자는 분명 결혼 전에는 어린이날 선물을 택배로만 보냈었다.

그러다 작년 어린이날에는 나와 함께 직접 조카를 만나 선물을 사주고 형네 가족과 밥까지 먹었다(작년에 어쩌다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난다).

작년의 추억이 즐거웠는지 배우자는 올해도 나와 함께 조카를 만나고 형과도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 부분이 불편하다.

결혼 전에는 하지 않았으면서 결혼 후에는 달라지는 풍경.

결혼 전에는 심플하게, 간단하게 했으면서 결혼 후에는 나를 동원해 가족과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모습.

내 입장에서는 시부모님 이외 다른 시가 가족까지 신경쓰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더더욱.

매번 그런 의도가 보일 때마다 열심히 싹을 자르고 있다.


사회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완전 남이었던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혈연과 원가정을 넘어서 상대의 가족을 더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

노력을 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굳이 안 되는 마음을 노력해야 할까?

적당히 기본적인 선에만 다다른 이상, 더 친밀해지기 위해 혹은 더 잘 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평생 동안 볼 관계인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어린이날 선물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다만, 지금의 나는 택배로 선물을 보내는 게 최선이다. 굳이 더 해주기 위해 애쓰지는 않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배우자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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