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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n 24. 2021

하이델베르크

2015년 4월 28일, 여섯 번째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좋았다. 오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만난 독일 할아버지인데, 성에서부터 다리까지 가이드를 해주었다. 놀라운건 한국어를 하셔서 투어 내내 한국어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경과 독일 할아버지 덕분에 좋은 추억을 안고 간다. 


여행이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의 영향이 크다.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친절을 받았을 때만큼 인생이 살만 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하이델베르크는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따스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맛본 케이크. 겉표면은 카라멜라이징 되어 있고 시트 사이사이의 크림은 냉장고에서 살짝 굳은 모카향이 진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그 맛.


하이델베르크는 유명한 독일 관광지 중 하나로 당시에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가 찬 도시였다. 나는 천천히 하이델베르크 대학 시내를 지나 성까지 걸었다.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곳이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당시는 그 산책로는 잠시 폐쇄된 상태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철학자의 길까지. 살면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 때, 인문학을 마음껏 탐구하며 당시 철학자들의 발자취까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가 정말 부러웠다. 


혼자 찍은 사진 배경에 나온 독일인 할아버지!! 나중에야 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내게 말을 걸고 싶어했을까, 싶은 마음에 한 번 더 미소를 짓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올라가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을 때, 한 독일인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영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봤던 것 같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갑자기 할아버지는 한국말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족히 70세는 넘어보이는 백발의 독일인 할아버지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다니.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한국어로 하이델베르크 관광을 시켜줘도 괜찮겠냐며 정중히 물었고, 덕분에 나는 생각지 못한 한국어 가이드를 얻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은퇴 후 취미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사회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1446년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요!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 사태는 정말 유감이에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면서도 이렇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그 사람이 백발의 노인이라니!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할아버지는 자발적으로 사진까지 열심히 찍어주었다. 덕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내 모습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독일인 할아버지는 하이델베르크 성의 곳곳을 한국어로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관련된 우화들까지 재치있게 들려주면서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주었다.



독일 할아버지는 하이델베르크 성을 내려와 시내부터 다리를 건너 있는 산책로까지 나를 안내해주었다. 파란 하늘, 푸르른 들판, 세월이 느껴지는 주황색 벽돌들과 멋진 인연까지. 지루할 틈이 없었던 가이드였다. 



독일 할아버지는 강을 건너 하이델베르크 성이 아득하게 보일 때쯤 가이드를 마치겠다고 했다. 소중한 인연을 어떻게든 간직하고 싶었던 나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어가도 될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찾던 나는, 당시 갖고 다녔던 다이어리 속 자그마한 태극기 스티커를 할아버지에게 주었다. 만남과 헤어짐을 적절하게 매듭지을 수 있었던 인연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어느새 6-7년이 흐른 사이, 할아버지는 더이상 여행자들에게 가이드를 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을 때,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멋진 자켓을 입고 서성이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방문할 때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꼭 갖고 가야할 이유이다. 그때의 한국에서 온 여행자를 기억하시냐고, 덕분에 평생 간직할 소중한 인연을 새기고 갔다고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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