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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텐부르크, Rothenburg

2015년 4월 26일, 다섯 번째 도시

by 이레네 May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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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생하고 몇 번이나 연기해야 했던 로텐부르크. 고생한 보람이 있었고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말 예뻤다. 독일에서 으뜸가는 여행지답다. 슈니발렌도 먹고 예쁜 골목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었다. 슈니발렌은 우리나라가 더 맛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슈니발렌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혼잣말로 비가 오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가게 주인은 영어를 못했지만, 내가 우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들은 것 같다. 그는 내게 자기 우산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감사히 우산을 받아 들은 나는 길을 나섰지만 이내 비가 다시 그쳤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우산을 돌려주러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은 우산을 가져가도 된다고 하며 내게 슈니발렌 하나를 더 고르라고 했다. 그렇게 공짜 슈니발렌 하나와 우산까지 얻은 나는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숙소까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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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로텐부르크 일정은 이틀 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독일에 '로텐부르크'라는 지역이 두 곳이 있었다는 걸... 'Rothenburg'와 'Rothenburg ob der Tauder' 이렇게 두 곳이 있는데, 내가 가야 할 곳은 두 번째 곳이었다. 심지어 숙소에서 2시간 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Rothenburg'라고 검색한 후 기차에 올랐고, 그 기차는 나를 프랑크푸르트에서 편도로 4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기대를 한껏 안고 내린 로텐부르크 역은 텅 빈 낡은 역사였고, 나이 지긋한 독일인 아저씨 몇 명만 벤치에 앉아있었다. 예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던 나는 잠시 역사를 서성였는데, 누가 봐도 여행자의 모습이었던 나를 한 역무원이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 역무원이 내가 전해준 종이에는 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안내문이었다. 내용인즉슨, '당신이 오고 싶었던 로텐부르크는 이곳이 아닙니다.' 그저 허탈한 웃음으로 나는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기차에서만 시간을 보냈던 하루였지만 재미있으면서도 어이없는 상황에 그저 웃으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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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도착한 만큼, '진짜'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der)가 보여준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동화 같은 색감, 곳곳에 자리한 귀여운 소품 가게들. 로텐부르크는 사람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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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집들이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빽빽하게 붙어있지만 답답해 보이지는 않는. 오래되었지만 촌스럽거나 낡아 보이지는 않는. 저 돌바닥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을 지탱해주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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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주변국들에게 로텐부르크는 독일의 주요 관광지라고 한다. 이 날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했다. 모두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며 즐거워 보였다. 


우산과 공짜 슈니발렌을 주었던 친절한 가게. 그때 그 주인은 아직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궁금하다.우산과 공짜 슈니발렌을 주었던 친절한 가게. 그때 그 주인은 아직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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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나라에 혜성처럼 나타나 유행을 일으킨 슈니발렌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독특하고 귀여운 생김새 덕분에, 슈니발렌이 우리나라에 런칭한 초반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갔다. 처음 먹어보고 홀딱 반했던 나는 종종 엄마와 함께 슈니발렌을 사 먹곤 했다. 엄마는 깜짝 선물로 슈니발렌 세트를 사다 주기도 했다. 지금은 소리 소문 없이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것 같은데 가끔 그 설탕과자 같은 맛이 생각난다. 

슈니발렌은 로텐부르크에서 처음으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로텐부르크 곳곳에는 알록달록 동그란 모양의 슈니발렌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맛은 우리나라 슈니발렌이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생각지 못한 친절과 함께 경험한 슈니발렌은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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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들어오면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다시 꺼내본 로텐부르크는 예쁜 모습이 너무 많아 사진을 고르기 힘들 정도다. 지금은 다소 적막한 마을이 되지는 않았을지, 그때 그 슈니발렌 아저씨는 장사를 잘 이어나가고 있을지 걱정이 된다. 로텐부르크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가장 아끼는 코트를 입고 화려한 전구와 트리 아래를 거닐고 있을 로텐부르크에서의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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