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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Oct 23. 2021

뷔르츠부르크

2015년 4월 29일, 일곱 번째 도시

절망적이었다. 옷가게 들어가서 옷을 입어보았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끔찍했다. 군데군데 군살이 많고 팔뚝도 굵고 허벅지 뒤쪽에는 셀룰라이트가 드글드글했다. (…)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외모,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여기에서까지 나를 괴롭힌다.

여행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감정이다. 때론 여행지 자체에 대한 기억보다,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이 더 크게 남을 때가 있다. 내게 뷔르츠부르크가 그렇다.



뷔르츠부르크에는 이렇게 멋진 붉은 성당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겐 여행지에서의 기쁨보다 당장 내가 어떻게 보일 지를 더 신경 썼다.



그때는 진심이었다. 외모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갑작스레 날 찾아와 잠식시켜 버린다. 나는 힘없이 빨려 들어 ‘생각의 자학’이라는 늪에 빠진다. 한 번 나 자신을 밉게 보기 시작하면 끝없이 안 좋은 모습만 보인다.



지금의 내가 6년 전의 내게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더라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를 기다려야 할 뿐이다.



도저히 여행할 기분이 나지 않았던 나는 오후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그리고 기차에서 엉엉 울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릴 때가 되자 내 근처에 앉아있었던 한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왜 울고 있니”와 같은 말은 아니었다. 그냥 일상적인 날씨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때로는 오히려 그런 말 한 마디가 더 위로될 때가 있다. 내 울음에는 이유가 있었을 테니 굳이 묻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 한 마디는 걸어줘야 할 것만 같은. 그때 그 남성은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두고 내 살이니, 외모니에 대한 좌절을 했던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후회하거나 원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뿐. 그것 또한 나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과거니까.


다만, 뷔르츠부르크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더 방문해서 다시 새로운 감정을 갖고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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