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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달 Aug 27. 2021

바다가 부르는 소리, 이제 드디어 쓸 때가 되었다고

비 오는 날의 수기

아침부터 날씨가 영 눅눅하다. 밤새 에어컨을-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을 살려 26˚C로 맞춰놓고-가동했음에도 습도는 70%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당한 시간에 눈이 떠져 제일 먼저 바라본 창 밖은 흐리고 어두웠다. 비가 내리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입속으로 짧게 '출근 안 해서 다행이다'라고 읊조렸다. 일할 때도 사실, 출근을 그렇게 자주 하지는 않았었지만.


이런 날씨엔 '회사에 간다'는 행위 자체보다, 회사를 가기 위해 만원 지하철-혹은 버스-를 타야 한다는 그 행위가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과 사람의 살이 맞부딪히기엔 끔찍한 온도와, 공기 중에 축축히 녹아든 습기가 불러내는 퀴퀴한 냄새와, 그런 요소들이 뒤섞여 어우러 내는 특유의 축 처진 분위기. 일주일의 마지막, 혹은 마지막이 아닌 출근길을 위해 닭장 같은 지하철에 면봉처럼 빼곡이 서서 이리저리 쓸려가며 서로 부딪히기라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부라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날선 공기가 드리운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자본주의 제도에서 잠시나마 일탈을 선언한 나같은 사람들이 드물게 느낄 수 있는 혜택이다.


그래서 나는 출근 준비, 혹은 업무 준비를 시작하는 대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밀린 설거지를 한 뒤, 책상을 겸해 쓰는 식탁에 앉아 멍하니 서귀포 앞바다를 생각한다. 어제 2차 접종을 마친 탓에 커피는 내리지 않았다. 어디서는 담배도 가급적 피우지 말라던데,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참다가 아침에 끊어 피운 담배의 맛은 달콤하기만 해서 저절로 쓴웃음이 났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낡고 작은 이 18평 아파트는 고양이가 가끔 애앵, 하고 우는 소리와 실외기가 가끔 우웅, 하고 우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지나치게 조용하다. 입 달린 생물은 나와 고양이 둘 뿐이라,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고양이만 외롭게 우는데 그 애의 우는 소리는 언제나 ASMR처럼 들리니 결과적으로 마음은 여전히 평화롭고 고요하다. 가끔 창틀을 때리는 빗소리, 집 앞 대로에 흥건히 고인 물웅덩이를 바퀴 네 개 달린 차들이 쭉쭉 밟고 미끄러지는 소리 정도가 지금 이 작은 세상이 내게 허락한 소음이다. 이 고요한 평화 속에서 나는 시침과 분침을 마구 돌려 3월달의 서귀포 앞바다로 나를 날려보낸다.


10여 년간 몸담았던 일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뒤, 내가 스스로에게 베푼 축연은 매우 단순했다. 나는 끊임없이 술을 마신 뒤 주저없이 짐가방 하나를 챙겨든 채 제주도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아마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톡이었을 수도 있고, 우슈아이아였을 수도 있고, 하다못해 치앙마이나 빠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긴 항해 끝에 잠시 닻을 내린 뒤 살펴본 기항지의 최선은, 그 때는 제주도 뿐이었다. 그래서 한 달을 그곳에서 보냈다. 걷고 또 걷고, 걸으면서.


처음 도착해 빳빳한 소독약 냄새로 가득한 이불을 휘감고 잠드는 그 순간부터 나는 남겨진 휴식의 날을 헤아리느라 꽤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돌아가야 하는 날을 떠올린다는 건 다급히 쫓기는 날들을 살아온 자의 어쩔 수 없는 천성인가 싶었다. 그러나 걷고 걷고 또 걸으면서 그런 다급함은 흐르는 땀에 씻겨 조금씩 날아갔고, 비 내리는 어느 오전 칠십리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 2층에 앉아 멍하니 물결치는 바다의 모습을 구경하는 망중한까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여행자였다면 비 내리는 날씨는 횡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머무르는 자에게 비 내리는 날씨는 그동안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게 해주는 귀중한 기회다. 잔뜩 찌푸리고 흐린 얼굴로 넘실대는 파도와 회색빛 하늘을 보며 나는 '이제야 뭔가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그 생각은 파도에 부딪혀 비산하는 포말들처럼 와르르 밀려왔다가 산산히 조각난 채 이내 와르르 쓸려 나갔지만, 그 때 느꼈던 하나의 감정만큼은 손수건에 잘 싸서 가슴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슴 한 구석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던 그 감정은, 축축한 서귀포 앞바다는 아닐 지언정 차라리 아가미가 있는 편이 살기에 더 용이한 것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드는 이런 날씨와 오는 둥 마는 둥 쏟아지다 흩뿌리다를 반복하는 빗줄기 사이에서 마침내 소리를 빽 질러가며 내 귀를 붙잡고 흔들었다. 이제 좀 제발 쓰라고.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그 때의 그 바닷가로 날려 보낸다. 섬을 한 바퀴 휘휘 돌아 코끝에 매달리던 바닷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젖은 바람, 팔뚝 아래 드러난 맨살에 처덕처덕 달라붙던 눅눅한 공기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듯, 그 때 이후로 한 뼘도 자라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던 나를 바닷가의 의자에 주저 앉힌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이 내 어깨를 한껏 떠미는 동안, 참으로 오랫동안 멈춰있던 것들이 비로소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고양이가 내 뒤에서 애애앵, 하고 다시 길게 울기 전까지 나는 그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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