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는 무당, 헤매는 나를 받아들이다

불안은 나의 힘

by 미정다움

무당이 되고 나니, 나의 유튜브 추천 영상은 온통 다른 무당들로 채워졌다.

사실.. 그 영상들을 볼 때마다 괴롭다. 시선을 끌기 위한 어그로, 다른 무당을 비난하며 자기만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 신이 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을 보면 혼란스럽다가 급기야 '역겹다'는 감정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무당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를 세상에 오픈한 순간부터 나는 '발가벗겨져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을 느낀다. 그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의 영상을 보며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참 쉽지 않은 길이다.


이 불안의 근원을 나는 안다. 나는 평생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는 기어코 배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인간'이었다. 공무원으로서의 24년은 그 습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무당'의 세계는 내가 살아온 방식과 정반대에 있다. 이해하고 분석하는 영역이 아니라, '나'를 비우고 그저 느껴야 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이 광활한 세계 앞에서 나의 '분석가' 자아는 길을 잃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속 뭔가를 찾아 헤매는 나"를 목격하게 된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애써보지만, 그 헤매임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그러다 어제, 아이들을 챙겨주러 잠시 다녀왔다. 몸도 마음도 좋지 않았던 큰아이가 웃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하는 자리에 밥상을 갖다 달라는 아이의 말에 "투덜대면서도" 나는 기꺼이 밥상을 날랐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난 진짜 무당이 맞나 봐. 그러면서 엄마이고. 그러면서 인간 김미정이고.' 나는 이 어렵고 복잡한 세계를 나만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유 없이 오른쪽 다리가 아팠다가, 나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은 듯이 통증이 사라졌던 경험. 예전의 나라면 불안에 떨었을 그 아픔을 지난번 굿에서 나를 질책하고 호통치셨던 "외할머니의 지기인가"라고 생각하게 된 변화. 그분들이 오셨다는 신호가 이제는 '불안'이 아니라 '감사'로 다가온다.

눈물, 아픔, 짜증, 분노. 나의 모든 감각이 더 이상 나를 어지럽히는 혼돈이 아니라, '그분들'과 연결되는 통로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어제는 오래간만에 나의 브런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시절의 내 감정과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남겨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들이 지금의 나를 또 위로해 주었다. 구독자가 73명이 되었다가 다시 빠지기도 해서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당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 인스타도, 브런치도, 그리고 부끄러움 속에 올린 나의 첫 유튜브 영상도. 이 모든것들이 지금 당장 '떡상'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의 세계를 지탱해 줄 '주춧돌'을 하나씩 세워두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오늘 나는 '찾아 헤매는 나'를 더 이상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호기심'이야말로, 이 미지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명쾌하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 모른다.

물론, '일월 꽃무당'의 길에 막 들어선 애동무당인 나에게 그 '분석하려는 습관'은 지금 당장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 헤매임이 훗날 궤도에 올랐을 때, '인간 김미정'의 분석력이 '일월 꽃무당'의 영감을 번역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헤맬 것이다. 분석하고, 배우려 들고, 때로 불안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이 모든 나의 혼돈을, 결국 그분들이 정리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이 불안조차 나의 일부이며, 내가 만들어 갈 세계의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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