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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03. 2022

[초단편소설] 그 인간


그 인간



 이 정각에는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하물며 미물 중의 상 미물인 돌맹이도 머무는 자리가 찬지 더운지를 아는데, 그 인간은 달랐다. 정확히 하루 열 두 번, 화장실에 가거나 풀을 뜯거나 작은 새들을 사냥할 때 말고는 그 자리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 인간은 돌과 닮은 점이 많았다. 아니, 차라리 돌이 더 생동감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금장대에는 동글동글 모서리가 둥근 예쁜 돌이 많았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당당하게 버티고 선 풍채가 바다 저편에서 바람의 질투를 몰고 온 까닭에, 날카로웠던 돌들이 고개를 돌리고 억센 풀들은 이내 연하고 부드러워졌다. 


 어린 승려들은 수행 중 꾀를 부리기 일쑤였다. 그날, 저들 작은 머리통마냥 맨들맨들한 몸을 이리 저리 처박힌 돌은 어떤 동자승에게 얄궂은 장난을 당했다. 먹이 듬뿍 묻은 붓펜으로 그려진 우스꽝스런 이목구비를 얻게 된 것이다. 한참 낄낄대며 돌을 가지고 놀던 동자승은 노승의 호령에, 얼른 돌을 어깨 너머로 내던지고 잰 걸음으로 일행의 뒤를 좇아 떠나버렸다. 삐뚤빼뚤한 눈과 코와 입이 생긴 돌은 생각했다. 생각이라는 것이 그저 정각 위에 누워 그 천정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래, 돌은 생각했다.


 ‘사무칠 것 같은 고독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인간은 돌의 생김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랜 세월을 이 정각에, 속되게 말하자면 빌붙어 살아오는 동안에 보았던 가장 군침도는 인간과 돌은 닮아있었다. 군침도는 인간은 오년 전, 강가의 동쪽 뭍에서 그 인간이 발견했다.‘군침 인간’은 키가 아주 컸다. 그리고 아주 홀쭉했다. 피부는 고무와 천의 중간쯤 되는 질감이었는데, 몸의 끝에는 활짝 웃고 있는 눈 코 입이 있고, 기다란 팔만 있을 뿐 다리는 없었다. 바람을 있는 힘껏 훠훠 채워 넣는다면 나부끼는 모양새가 깨나 우스울 법한 모양새였다. 인간은 아무리 아는 것이 없어도 군침 도는 인간이 실제로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군침이 돌았던 까닭은 그 피부에 연하게 밴 고기와 연탄 냄새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뭍에 쪼그려 앉아 흰 가죽을 들여다 보던 인간은 멀리에서부터 선명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정각 밑으로 숨어들었다. 인간에게는 체면이 없었다. 당당히 들고 다닐 얼굴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서 정각 마루 위로 콩콩대며 올라오는 노인들의 시커먼 발바닥을 보면서, 인간은 생각했다. 생각이라는 것이 그저 판자 틈새로 노인들의 쪼글쪼글하고 맛없어보이는 발바닥을 보는 것이라면, 그래, 인간은 생각했다. 


 ‘내게도 얼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그 인간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인간이 온 몸이 희고 윤기나는 털로 뒤덮인 괴수이며, 번뜩이는 안광을 지녀 보통 사람이 그 눈을 마주하면 평생 정신을 잃고 미쳐버리게 된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소문은 퍼지고 퍼져서는 그 인간이 사람을 잡아먹으며, 남은 뼈는 곱게 갈아 온 몸에 묻히고 다니는 덕택에 그 털의 윤기를 유지하는 것이란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 사실을 인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온 몸이 털로 뒤덮인 것은 맞았다. 때문에 인간은 여름이면 시원한 정각 마루에 들러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울에는 땅에 배를 깔고 눈밭에 파묻혀있으면 더욱 미물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확실히’미물인 돌과‘미물에 가깝지만 생물인’그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보았을 때 미물인 돌이 조금 더 윤택한 삶을 보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돌은 그 자리에 누워 있을 자유를 얻었는데, 그 인간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산 근처에서 발견되는 흰색이란 흰색은 모조리‘처분’했다. 확성기에서‘살상’이라던지‘살해’와 같은, 어떤 비인간적인 단어는 들려오지 않았다. 괴수를 발견하거나, 괴수로 의심되는‘흰’물체를 발견할 즉시‘조취를 취할 것’,‘처분’할 것. 뒷산에는 한동안 흰 사체 무더기를 실은 쓰레기차가 오고 갔다. 조종사는 간단히 기계를 조작하여 파놓은 구덩이로 사체들을 들이부었다. 그 광경은 멀리에서, 고슬고슬한 쌀알을 쌀통에 담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틈에 한동안 인간은 없었다. 흰 털을 가진 산고양이와 왜가리, 개들의 차례가 끝나고 나자, 그제서야, 인간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아무도 인간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맞아 죽었는지, 총살 당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사체를 싣고 와 포상금을 얻어 간 사람은 존재했다. 그 사람은 낙동강 하구에 득실거리는 뉴트리아를 잡아 마리당 이만원에 팔아넘기는 것을 업으로 삼은 남자였다. 가방에 포상금을 두둑히 챙긴 남자는 그렇게 무섭다던 괴수가 의외로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숙이던 것과, 고양이 발바닥처럼 동그란 손으로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을 부비던 것을 떠올리며, 사람을 잡아먹었다면 입이 있어야하고, 입이 있으려면 얼굴이 있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 고개를 갸우뚱해도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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