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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Oct 30. 2023

이 두근거림은 뭐죠

설렘일까 분노일까

“최.로.미!!!” 이름을 한 글자씩 힘주어 말해본다.

프랑스 육아를 분석한 책에서는 부모가 확신을 가지고 아이에게 말하면 권위를 지키면서 아이에게 훈육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건 프랑스인 유전자에 있는 어떤 생물학적 요소이거나 아니면 나랑 프랑스가 안 맞는 것이 분명하다.


27개월의 아이는 오늘도 본인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걸까. 정돈된 침대에 시리얼을 던지고 장난감을 발로 걷어차면서 특유의 장난이 섞인 눈빛을 보낸다. 이 모습이 나랑 닮아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엄마라는 역할에 의욕과 욕심이 앞서는 나는 회사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그때 나의 사수였던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사이가 안 좋아진다” 그 부장의 말이 이렇게 맞았던 적이 있었나 싶은 요즘이다.



오늘 저녁 식사 시간도 전쟁이다.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반찬을 다 골라 먹고 밥은 세 숟가락 정도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름 영양소를 고려하여 더운 날 국 하나에 반찬 서너 개를 한 시간 동안 차려낸 밥상이다. 참 부질없지만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또 본인 밥은 치우지 말란다. 학교 수돗가도 아니고 밥을 한 숟가락씩 먹고 간다. 이런 식습관이 답답하기도 하고 그동안의 식습관 교육이 소용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오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만하다. 혼자 놀기 심심했는지 엄마든 아빠든 한 명을 또 끌어낸다.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이야.”라고 나의 확신을 담아 말해보지만 역시나 실패. 이쯤 되면 나도 다른 쿨한 엄마(어딘가엔 있겠지)처럼 포기를 해야 맞다. 그렇지 못한 나는 아이의 밥과 내 밥을 사수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세 번의 호통과 세 개의 참을 인을 새기면서 저녁 식사를 마무리한다. 밥을 먹어 배부른 건지 분노를 삼켜 배부른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과일은 먹이겠다며 후식으로 복숭아를 깎았다

우리 집 사람들은 과일을 다 깎을 때까지 손이 기다리지 못한다. ‘매너가 없어, 흥’ 속으로 핀잔도 줘본다. 복숭아를 다 깎고 이제 나도 먹어보자 하는 찰나 아이가 다급하게 나의 포크를 가져간다. “어쭈, 이런 불효녀가 있나!” 장난으로 말한 찰나,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로(이건 분명하다) 조막만 한 손으로 쥔 포크에 야무지게 복숭아를 찍어 나의 입에 넣어준다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이 아이의 눈은 나에게 “엄마, 엄마 맛있지??? 엄마도 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아 너무 달달하다. 복숭아는 달지 않다. 그 순간의 너와 내가 달달하고 너의 마음이 달다. 나의 오늘 하루의 속상함과 서운함, 지질함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당충전.


이런 달달한 시간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이제는 재우기 전쟁이다. 하루에 전쟁이 수십 번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수면교육이라도 제대로 할 걸 싶다. 나의 경우 육아 스트레스의 반은 수면이다

아이에게 양치를 시키고 책을 읽어주고 물을 먹인다. 책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수면의식이다. 이렇게 하면 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다. 그걸 알수록 아이는 더 또랑또랑해진다.


처음 10분, 20분은 세 가족이 모두 평화롭다. 아이가 평화롭게 잠들고 그 기분이 자는 동안 쭉 이어졌으면 하는 엄마의 소박한 마음으로 자는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명령도 윽박이 아닌 제안이다) 하지만 침대에서 이런저런 소리도 내고 남아있지 않은 손톱을 깎아라 온갖 주문이 많아진다. 

이러다 아이에게 화내겠다 싶으면 결국 우리 부부는 자는 척을 한다. 어쭙잖은 코 고는 소리도 내보고 절대 눈을 뜨지 않는다. 외롭게 혼자 멀뚱멀뚱 눈을 뜨고 뒤척뒤척하던 아이는 스스로 잘 준비가 되면 쓱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 우리에게 치대면서 장난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아빠 배에 차례로 뽀뽀를 해주고 자기 자리에 가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엄마아빠를 불러서 자기를 보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진짜 수면의식인 것이다.

우리 딸, 참 스위트하다. 

이런 인사를 처음 받았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아이가 너무 예쁘고 우리 아이인 것이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인의 인생의 한 부분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쩌면 대부분을 아이에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육체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이런 일로 나는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정신적으로 지친다. 

하지만 아이가 나에게 주는 달달한 사랑의 순간들이 그 어떤 보양식으로도 해줄 수 없는 정신적인 피로를 씻어주고, 그걸로도 모자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연애 때 느낄 수 있었던 설렘과 비슷한 행복감도 채워준다.


아 설렌다. 오늘은 또 아이와 어떤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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