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
단정(端整)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전에서 '단정하다'를 찾았을 때,
비슷해 보이지만 꽤 여러 뜻이 나오는데
'깨끗이 정리되어 가지런하다'의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는 화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화려한 경력과 화려한 언변, 외모로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들 안 그럴까
그 시절 상상 속 미래의 나는
누가 봐도 멋있어할 만한 전문직에 높은 연봉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으며,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을 가꾸며 늘 멋진 옷을 입는 커리어우먼의 표본이다.
예를 들면, 미드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뉴욕의 성공한 여성이었다.
(TV에서는 그녀들의 노력도 상세히 보여줬어야 했다)
이런 상상을 했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나름 꿈 많은 여학생이었나 보다.
사회에 나와서는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주변사람들에게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행을 적당히 센스 있게 하는 사람.
선물을 할 때는, 허를 찌르는 센스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그런 사람. (그놈의 센스)
살아남아야 하는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나에게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을까,
속해있는 그곳에서 나의 능력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것일까.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화려한 경력은커녕, 자기 계발조차도 쉽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버린 내가 손쉽게 찾은 차선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새로운 목표는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적당히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러니하게 내 시간은 없는데 생각할 시간은 많아졌다. 이상하다)
무수히 솟아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이든 글이든, 머릿속에서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늘 어렵다.
비록 꽤 오래전 이긴 하지만, 학생 때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머릿속에서부터 정리가 되어 술술 나왔던 거 같은데 이젠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안의 어떤 근원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빌드업해서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빌드업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이 적절한 예시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유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머릿속을 정리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니 내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걸 찾아서 차례대로 정리해서 꺼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기부터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그저 약간의 센스가 들어있는 농담 정도만 전달해도 무리가 없었고
스스로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렇게 예전의 하드웨어만 믿고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해주지 않으니 뇌가 계속 쌩쌩하게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메모도 해야 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 한다.
이제 나는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이' 깨끗이 정리되어 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벨링 되어 잘 정리되어 있는 팬트리처럼 내 머릿속도 서랍처럼 잘 정리해두고 싶다.
그래서 신경 쓸 것들은 많은데 신경을 다 못쓰고 있는 요즘,
깨끗한 머릿속에서 하나씩 꺼내서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려운 개념을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정말 그걸 잘 알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건 필히 머리에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알쓸신잡에 나오는 박사들이 그런 사람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연설명을 두 번 세 번 하지 않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점점 더 단정해질 내 글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