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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Nov 13. 2023

내가 집에 있는 엄마가 되기로 한 이유

집에서 일하는 엄마이고 싶다.

그동안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이 먼저 꺼내고 싶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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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내가 집에 있는 엄마가 되기로 한 이유로 이유시리즈 2탄이다.  



학생 시절 나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동경이 심한 편이었고,

아이가 생긴다고 나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내 인생을 포기하는 거라고 건방진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9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출산, 육아 휴직을 15개월 꽉 채우고 복직한 지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 나보다 더 아까워해주었지만 

나로서는 그만두는 게 맞았다.


직장에서의 나와 가정에서의 나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완벽주의자를 표방하는 사람이다.(이건 굉장히 다르다) 회사생활과 가정을 보살피는 것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욕심을 부린 건지도 모르겠다. 실상은 7시 30분까지 후줄근하게 출근해서 자리를 지킨다. 점심시간 동안 수면실에서 잠을 자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사무실로 올라온다.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려 아이에게 옮기게 될 것이 걱정되어 점심도 먹지 않았다. 오후에는 나 혼자 상사와 싸우다가 4시 30분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부모님께 아이를 바통터치받는다. 그리고는 씻기고, 저녁먹이고, 놀아주다가 재우고, 이유식을 만들고 12시에 잠들었다. 이건 물리적 시간의 밸런스는 얼추 맞는다 해도 나의 정신과 체력을 분배하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랑 같이 있던 휴직 기간의 15개월이 너무 행복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육아가 많이 괴롭지 않은 사람이다. 행복한 지옥이라는 육아에서 지옥이 그렇게 빡센 지옥이 아니었다. 신랑을 더 많이 닮은 아이가 가끔 내 표정을 따라 하는 웃음을 지어주고 조리원에서 데려온 날부터 통잠을 잤던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지옥이었다고 할 수 없다.

아이를 쳐다보는 눈에서는 꿀 떨어지지 않는 날이 없는 나였다.

복직을 하고 좀비처럼 지내던 어느 날 저녁,

 놀고 있는 아이를 영혼 없이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ㅇㅇ아, 아이를 그렇게 쳐다보면 안 될 거 같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힘든 나를 몰라주고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냐면서 서운한 마음을 가득 담아 남편에게 눈물콧물을 쏟아내야 맞았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아이에게 미안함.

회사를 다니는 게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아이에게 그런 눈빛을 하는 엄마라니. 이건 아니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데, 내가 계속 이 상태로 (좀비 상태로) 돈을 벌어 아이에게 비싼 음식을 먹이며 동시에 이런 감정을 먹이면서 키우면 우리 아이는 건강할까.  


덧붙여, 이 시기의 나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가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는 그런 류의 생각이 아니다. (혐오에 가깝게 가장 싫어하는 사고방식이다.) 9년 차가 되어 회사에 가서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바쁜 와중에 한가한 시간이 생긴다. 그러면 3년 주기로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나는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회사원이 되어야 하는 줄 알고, 회사원이 되었다. 그 흔한 사춘기 시절에 자아 찾기를 못하고 이제 와서 시작된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아도 괜찮은 타이밍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정확히는 전업인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집에 있으며 돈을 벌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애정 어린 걱정들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 걱정들을 곱씹고 곱씹었을 나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은 갑자기 또렷이 떠오르기도 하더라 



작은 소도시에서 나름 공부 잘한다고 인정받던 딸이 대학교를 나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평생에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은 시간이 2년이 채 안 되는 우리 엄마는, 네가 당장 힘들어 그런 거라며 기꺼이 본인이 서울로 와서 아이를 봐주며 같이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엄마는 사회생활을 하고 자신의 일에서 인정받는 것을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분이다. 더군다나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서 (물론 우리 엄마라면 이 동네 인싸는 금방일 수 있지만) 사위와 딸의 집에서 본인이 원하는 홈쇼핑도 마음껏 못하고 사는 불편을 감수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었다. 내 아이는 나와 남편이 낳은 아이니까 엄마의 일상을 포기하도록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를 몇 주 동안 설득해야 했다. 내 인생이라고 엄마에게 날 세워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딸에게 기대하고 희생해 준 것들에 대해 내 나름의 예의였다. 엄마는 나에게 회사를 다니며 예쁘게 꾸미고 사람들과 회식도 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다니라고 말했고, 나는 나보다 그걸 더 즐기는 사람이 엄마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엄마의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지 나는 주기적으로(의식적으로) 친구와 만나 맛있는 걸 먹고 핫플을 찾아 나서는 외출을 한다.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되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고, 엄마는 네가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니 잘 그만두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아이와 4계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 행복하다.

아이의 사진을 몇 장 찍고는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가방에 푹 쑤셔 넣고

봄에는 내가 좋아하는 목련나무를 보며 꽃이 어떻게 펴는지 손으로 알려주기도 하고,

여름에는 눈이 시릴 정도의 초록초록한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을 넋이 나간 듯 쳐다보고 있기도 한다. 가을에는 아이와 낙엽을 줍고 겨울에는 눈밭을 구른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이와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때마다 씨익 웃으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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