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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Nov 23. 2023

다리를 꼬고 필라테스를 생각한다.

다리와 뇌의 타협이 필요하다.

아이와 아침식사를 할 때 대화의 주된 내용은 오늘의 일정이다. 

평일에 아이가 "엄마 로미 오늘 어디 가요?"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지"라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뭐해요?"라고 물어본다. 

그럼 일주일의 한두 번의 대답은 

"엄마 운동가, 필라테스 " 

"필~롸~퉤~스" 아이에게는 아직 어려운 발음인 건지 이 단어를 발음할 때는 항상 신이 나있다. 

"우리 엄마는 필라테스 좋아해" 

맞다. 나는 기구 필라테스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꽤 자세가 나쁜 편이라 어깨가 살짝 말려있고 몸은 항상 구부정하다. 

다리 꼬는 것도 좋아한다. 탄수화물 중독처럼 끊어야 하는 걸 알지만 끊어낼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는 책가방이 무겁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었는데, 그건 이제 터무니없는 소리지. 

웨딩사진 찍을 때도 표정 짓는 것보다 꼿꼿하게 서서 자세 잡는 것이 제일 어려웠으니 말 다했다.

그런 사람의 몸으로 필라테스를 하고 나오면 주름져있던 옷이 쫙쫙 펴지는 것처럼 (내 몸이 펴지진 않았어도) 흉내라도 냈으니 한없이 개운한 것이다. 

 아가씨 시절. 몇 번 해본 요가와는 다르다. 기구 필라테스는 내 몸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기구가 있기 때문에 나처럼 몸이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에게는 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나는 그룹 수업을 받고 있는데 많으면 6명의 수강생이 한 동작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선생님은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지시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게 내가 필라테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항상 생각이 자가증식하는 내 머릿속이 일순간 정지가 되는 것이다. 수업시간만큼은 책상의 책을 한 팔로 밀어 치우듯 내 생각 같은 건 저리 치우고 로봇처럼 인풋과 아웃풋을 바로바로 만들어내야 되는 것이다.(물론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나오진 않는다). 오른팔을 왼쪽 옆구리에 끼라고 하면 그걸 바로 캐치해서 해야 한다. 실수로 왼쪽 팔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는 걸 두고 보지 않는 선생님이다. 그 사람이 동작을 할 때까지 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집중을 놓을 수 없다. 그게 좋다. 

나처럼 능동적인 환경에 던져져 있는 사람은 가끔 수동적인 상황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나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통제당하지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걸까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의 몸은, 적어도 나의 자세는 그동안 더 좋아진 적이 없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얼마나 최악으로 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밭일 한 번도 한적 없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할머니가 될 순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오싹해진 나는 카페에서 다리를 꼬고 다음 수업을 예약한다. 

내 다리 근육과 뇌가 타협을 하거나 어느 한쪽이 빨리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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