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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Feb 01. 2024

미역국에 브로콜리 넣어도 되나요?

아이의 편식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얼마 전 티비에서 편식이 심한 연예인을 보았는데,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 보인 표정이 너무 웃겨 오랜만에 육성 웃음이 터졌다

깔깔 웃으면서도 마음한쪽 구석에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우리 집에 딱 그런 아이가 자라고 있어서일 거다.


아이가 갓난쟁이일 때부터 해야 하는 여러 가지 교육이 있다.

말이 교육이지 일종의 습관을 잡아주는 것인데 수면교육, 식습관 교육 같은 것들이다.

수면교육은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으로는 애초에 포기를 한 상태이고

그럼 하나라도 잡자는 마음에 식습관교육만큼은 잘 한번 해보자 아주 파이팅이 넘치는 엄마였던 나였다.

자리에 앉아서 먹기, 영상 시청하지 않으면서 먹기 등 나름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건 실패했다. 아주 처참히 실패했다.


아이 이유식 때부터 뭐 하나 빼놓지 않고 직접 해 먹였다. (나는 처음에 굉장히 군기가 들어가는 편이고 엄마가 처음이니 얼마나 심했을까)

이유식 책을 자기 주도식, 한 그릇 이유식 등 종류별로 사서 책에 나오는 메뉴를 최소 두 번씩은 돌리면서 이유식 메뉴를 구성했다.

그때 내 생각은 이렇게 하면 그때 보통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식재료는 대부분 접했을 거고, 어릴 때 여러 가지 식재료를 친근하게 접하면 편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노력의 덕분이었을까 처음 유아식을 먹을 때 아이는 시금치나물에 입을 쩍쩍 벌리고 낫토 비빔밥을 제일 좋아하던 아이였다.

후후 난 성공했다!!!

우리 애는 골고루 잘 먹어요^^

.

.

.

역시 입이 방정이다.

어느 날부터 보통의 아이 입맛으로 확 변했다.

(내 입장에서는) 놀랄 정도로 한순간에 훅 변해버렸다.

이제 시금치는 본인 그릇에 담겨있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고

닭고기 발골 장인처럼 기똥차게 채소를 뱉어내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의 패인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어른이 먹어도 힘든 맛없는 채소요리를 먹은 기억이 아이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일까

이 세상에는 이것 말고도 쉽게 입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기름진 음식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어쭙잖게 주워들은 이야기에 나의 루즈함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그 음식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져 더 편식이 심해진대!!

를 맹신하고 싶었던 나의 루즈함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시금치를 한번 거부했을 때,

다른 조리방법으로 다양한 음식을 아이가 계속해서 접해볼 수 있도록 시도해봤어야 했는데

나는 '안 먹네? 억지로 먹이면 안 되니까 그냥 다른 재료를 먹이자'라고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채소류 중에 몇 가지는 살아남았다.

미역국, 콩나물, 오이.. 그리고.. 음.. 더 쓰고 싶은데..

과일!!!

허허


이미 아이가 편식쟁이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이의 변비인데,

변비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고작 마사지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는 건 참 고역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가 먹는 채소를 활용해야 한다.

아침엔 사과를 준비하고

식이섬유 주스를 준비하고

고구마를 준비한다.

콩나물무침과 오이무침은 아이에게 김치처럼 의례 반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미역국인데 제 얼굴보다 큰 그릇에 한가득 담아줘도 금세 후루룩이다. 정말 미역국이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미역국에 브로콜리를 넣는다는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사실 몇 가지 양질의 채소와 과일, 고기로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살 수 있지만

걱정걱정 열매를 수시로 먹고사는 엄마 입장에서는

유치원에서 또는 학교에서 불편한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 번씩 불쑥 올라온다.

그리고 전업주부인 입장에서는 약간 프로젝트가 실패한 느낌이다. 주부가 전업인데! 조금 더 내가 신경 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건 정말 의미 없는 생각이다.


자, 그럼 이제 의미 있는 생각을 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상황은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아이에게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줘야지

그리고 협상에 들어가야겠지

“우리 집은 밥을 먹은 만큼 과자를 먹을 수 있어”

아 조금 치사한가

“5살 언니 되면 시금치 먹기로 했잖아^^“

이건 조금 구차하다

요리책이나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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