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반차 좀 주십쇼 엉엉
육아를 하면서 부부 사이의 가장 큰 위기는 언제 오는 걸까
나는 예전부터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온다고 들어왔다.
둘째가 태어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다
아주 맞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어느 한쪽이 조금 더 육아를 하면 (조금 더가 아닐 수 있지만)
어떻게든 상황이 해결이 되는데
육아할 아이가 두 명이 되면
부모 한 명이 한 명의 육아 몫을 담당해야 한다.
'1'은 아니더라도 '0.7' 정도는 해줘야
주양육자도 샤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두 명의 부모가 집에 있을 수 없는 현실에
갈등은 시작된다.
우리 집은 전업주부인 내가 주양육자고 남편이 경제적인 수입을 책임지고 있다.
고로
갑자기 압도적으로 덩치가 커져버린 육아와 허덕이며 싸우다 지치면
남편에게 바라는 것들이 날 선 얼음보다도 차가운 말로 날아간다.
당신은 퇴근이라도 했지,
새벽에도 언제나 대기조로 퇴근도 없는 내가
하루 단 3시간 정도의 센스 있는 공동 육아를 바라는 것이 그게 큰 일인가
"아니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잖아? 왜 기억을 못 해?"
"어제 회식해서 피곤하니까 오늘은 쫌 쉬어야겠다고?
어제 혼자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쫌 더 자기가 애들 씻기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도 전투태세 누구 하나 걸려봐라. 드릉드릉 준비완료.
물론 남편도 할 말로 따지면 요즘 날리는 꽃가루 보다도 많을 거다.
앞으로 20년은 더 부양해야 할 가족이 한 명 더 생겼고
기존에 부양하던 아이의 교육비는 어마무시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깨를 누르던 '책임감'이라는 놈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럴수록 회사에서는 더 뛰어다녔을 것이고
새로운 경제원을 찾아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출퇴근 버스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 너무 힘들어 ㅠㅠ '라는 아내의 카톡에 헉헉거리며 뛰어 들어왔는데
나의 마음씀에 대한 걸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잠깐의 쉴틈에도 눈치가 보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의 편이 되어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라던 그놈의 약속은 어디 갔는지
남은 건 세상 유치한 땅따먹기 같은 내가 더 힘들어 배틀이다.
당신은 첫째 유치원 보내고 둘째 낮잠시간에 잠깐 쉴 수 있잖아 (남편)
당신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 만나면서 농담이라도 하면서 정신적인 리프레쉬라도 하고 오지 (아내)
언제나 여유는 체력에서 나온다
쥐똥만 한 체력에서 나오는 생각은 이렇게 옹졸하다
육아는 팀플레이다.
우리 둘이 전략을 잘 세워서
아이 둘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이다.
개인전으로 내가 저 사람을 때려눕혀야 이기는 게임이 아닌데
왜 자꾸 나만 생각하게 될까
오늘도 아이 유치원 정기 상담으로 반차를 쓴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다.
"나 오늘 반차인데 늦잠도 쫌 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데 ㅠㅠ"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일어나자마자 아이 유치원 준비도 하고
둘째 이유식을 챙기던 내가 꾹꾹 눌러 담은 화를 머금은 소리로 이야기한다
"당신이 회사 반차지, 아빠도 반차야? 남편도 반차야?
육아 반차 쓴 건 아니잖아?"
어 잠깐만,
오.. 좋은 생각이다!
아무래도 육아 반차 제도를 만들어야겠다.
우리는 육아 5년 차니까 반차를 각자 5개씩 만들자
연차는 상대에게 너무 가혹하니 몇 년 뒤를 기약하는 걸로 하자
서로에게 정당한 사유를 이야기하고 승인을 받으면
문자 정도는 받아주는 육아 반차.
반차를 쓰는 동안
내 체력을 채우고
그 사이에 쌓인 먼지 같은 답답함을 조금은 날려버리고 오면
서로의 얼굴에 쌓인 피로 정도는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지지고 볶는 육아는
우리의 남은 결혼 생활에 비하면 몇 년 안 남았어
나중에 우리끼리 한 달 살기 하면서 놀러 다니려면
지금부터 사이좋게 지내자 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