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이유식을 시작했더니
건강이가 180일이 되면서 이유식을 시작했다.
"둘째는 무조건 시판이다!"라고 스스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해왔던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나란 놈은 어쩔 수 없다.
'일단 한번 해보고 진짜 못하겠으면 시판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고
'진짜 못하겠으면'의 기준은 매우 높게 잡아버리는 저는
네, 알아서 고생길 뛰어갑니다 껄껄
육아의 트렌드는 참 빠르게 변한다.
첫째 때는 '자기 주도이유식'이 유행이었는데
다음 해부터 '토핑이유식'의 유행이 시작되었나 보다.
이게 뭔가 하니,
아이에게 밥과 반찬처럼 메인이 되는 죽과 그 외의 식재료를 토핑처럼 따로 제공한다.
'아, 이렇게 하면 식재료 하나하나의 고유의 맛을 접해볼 수 있고 익숙해져서
나중에 편식을 조금 덜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이번엔 이 방법이 당첨이다.
책을 보며 공부하고 큐브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다.
나의 정성이 모이면 아이에게 해로운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가 먹지 않아도 화내지 말자고 다짐도 꼭 해야 한다.
이거 중요하다.
이제 우리 집은 시간 맞춰 식탁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네 명이 되었다
여기서 함정은 그 네 명의 식사 취향이 다 다르다는 것.
건강이는 조심할 게 많은 이유식 중이고
로미는 적당히 편식하고 매운 것도 못 먹는 평범한 6살,
와이프의 손맛에 이제는 적당히 길들여져
가끔 집밥이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말 못 하며 꼼지락거리는 43살도 있다.
그리고 매일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지겨워져 남편과 주말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아줌마도 있다.
길고도 길었던 연휴 중 어느 날 점심이었다.
첫째 아이가 먹는 몇 안 되는 음식(내 기준) 중
최대한 덜 지겨울 법한 냉면을 골라 준비하는데
남편은 쫄면 밀키트를 발견하고 신난 목소리로 "나 이거 먹어도 돼?"
라고 물어봤다.
나는 혼자서는 양이 많아 먹기 힘들었던 떡볶이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잠깐 고민했지만
"안돼, 나 떡볶이 먹고 싶으니까 떡볶이 먹어야 해 "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니 그런 사람이 있나
'에이, 먹고 싶은 건 먹고살자,
다 밀키트인데 뭐 하나씩 쳐내보자 '라는 생각으로
첫째의 냉면과 주먹밥을 완성하고
다음 메뉴를 시작하려는데 건강이 가 깼다.
오랜 낮잠으로 식사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버린 딸이 깨어난 것이다.
네 고객님-
다음 메뉴는 오트밀&쌀죽에 소고기, 양배추, 당근, 청경채 이유식입니다.
이유식 준비를 해서 남편에게 전달하고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닠ㅋㅋㅋㅋ여봌ㅋㅋㅋ 우리가 네 명인뎈ㅋㅋ 점심메뉴가 네 개야ㅋㅋㅋ"
함께 낄낄대며 웃던 남편이 조용히 말한다.
"여보, 갑자기 떡볶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아
일단 그거 같이 먹고 부족하면 내가 이따가 쫄면 해 먹을래"
당신.. 이런 남자였어..?
설렐'뻔'한 마음을 부여잡고 떡볶이를 만들어 남편에게 잔뜩 먹였고
남편은 배를 퉁퉁이며 쫄면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결과는 훈훈했던 우리의 점심식사 후
폭풍주방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첫째가 쓰윽 오더니 말한다.
"엄마, 배고픈데 간식 없어요?"
딸아, 그럴 땐 입이 심심한데 간식 없어요?라고 말해줄래
안 그러면 엄마가 조금 슬퍼져
다른 집은 쉬는 날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기) 이라는데
돌아설 수 없이 계속 주방에 있는 나에게는 먼 이야기다
그래도 아기새처럼 입을 쩍쩍 벌려가며 먹는 둘째와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면서 항상 엄지손가락 치켜세워주는 첫째와 남편에게 고맙다.
이 맛에 행복한 고생길로 매일매일 출근하는 거 아닐까
다만 소박하게
메뉴가 2개로 통일되는 날은 빠르게 와야 하니까
오늘 저녁엔 첫째 아이에게 김치를 먹고 힘이세진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