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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엄마의 출산일이었습니다.

제 생일이요

by 그럴수있지

생일축하해 생일축하해 축하해 주자

잊어버린 것 없나 생일축하 케이크

꼬깔모자 양초도 사랑해요 빠빠빠�


티니핑 생일 축하 노래로 맞이한 내 생일의 아침.

6살 딸 엄마의 생일의 시작은 어쩔 수 없이 티니핑이다.


나이가 들면 이런 이벤트에 무뎌진다는데

무뎌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내가 주인공이었던 일상에서

이젠 하루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날이 있는데

그날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거창한 걸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정성스러운 미역국이 있는 한상

오늘 하루 너를 위해 보내라는 마음이 꾹꾹 담겨 있는 친구들의 메시지

집안일을 조금은 덜 할 수 있는 일상.


점심에 남편이 끓여준 정성스러운 미역국 한상을 받아먹고

육아를 하는 몇 년 사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연락해 주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면서 답장을 하면서

그동안 가격 때문에 망설여졌던

내가 먹고 싶었던 곳으로 저녁 식당을 정한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은 역시 순탄치 않다.

첫째 아이는 어제 공동육아의 여파 때문인지 피곤하다며 그냥 집에서 감자튀김이나 먹고 싶다며 징징

이유식까지 부랴부랴 챙겨 나온 둘째는 카시트에 앉자마자 오열이다

괜히 서러워져 '저녁 한번 마음대로 먹는 게 쉽지가 않네..'라며

남편은 들어줄 말을 한번 해본다.

식당에 도착해서 먹고 싶은걸 마음껏 시키라며 둘째 옆에 앉아 이유식을 준비하는 남편 덕에

넉넉하게 음식도 시키고 와인 한잔도 곁들여보는 저녁이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 입장에 혼자 눈치가 보여

작은 케이크라도 사 와서 여기서 축하하자는 남편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1년 만에 온 레스토랑에서 넉넉히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식지 않고 따뜻할 때 먹으며

와인까지 한잔 마시는데 뭐가 더 필요했을까

참 소소하지만 평범한 아기가 있는 애 둘 엄마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 모두 배를 퉁퉁 두드리며 집에 와서 씻고 나왔을 때

생일 선물로 용돈을 보내셨다며 엄마에게 전화가 온걸 남편에게 바꿔주었다.

남편은 '장모님 xx이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첫 번째 출산일이다.


생일이라는 날에는 두 사람을 챙겨야 함을 항상 마음속에 새긴다.

생일자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그동안 열심히 살고 있음을 1년에 한 번쯤은 기특하다, 고생했다라며 토닥임을 받는 날이었으면 좋겠고,


그의 어머니에게는 당신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해본 사람이 되고 나니

출산이라는 것이

경이로운 행복감 이면에는

실은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고 해내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육아라는 것 또한 꽤 고된 일이라는 것도.

사람구실할 수 있도록 키워낸 어머니에게도

1년에 한 번쯤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몇십 년 전 나를 낳고 먹었던 미역국을

사실은 우리 엄마가 먹어야 하는 그런 날이다.


꿀 떨어지는 눈으로 육아를 하는 나를 보며

우리 엄마의 눈에는 한 때는 당신의 눈에 흘렀던 꿀을 그리워함이 가득하다.

너도 자식 낳아봐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요즘처럼 마음속에 맴돌았던 적이 없다.

내 아이를 사랑하면서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엄마,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고

제가 태어난 후 38년 동안

참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로 인해 조금은 더 고되었을 인생에

가끔은 내가 당신의 웃음이었길 바라요.

우리 앞으로 오래오래 내 생일 함께 축하해요

엄마의 출산일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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