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
최근 부모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지점에서 울컥했던 일이 있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는 분명 억울하고 속이 상한데 말로는 제대로 표현이 안되고. 말로 표현하려 해도 말이 안 되고 뭔가 타당한,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해서, 이런 내가 유치해서 스스로가 참 찌질하다 여겼다. 말로 표현이 안되자 그냥 네 살 먹은 아이처럼 '엉엉' 울고 속으로도 눈물을 삼켰다.
그동안 나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어 밤늦게 퇴근한 신랑을 끌어 잡고 물어봤다.
' 나는 감정 표현 잘하는 사람이야?'
' 아니.( 이때 나는 많이 놀랐다. 나는 감정을 잘 드러내고 표현해서 우리가 종종 싸워도 대화로 곧잘 풀고 평화로운 사이가 유지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냥 신랑이 다 받아주는 거였다! 순간,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
' 응? 왜?'
' 자기는 감정에 휘둘리면 먼저 경직-분노-성찰-후회. 마지막은 자책으로 끝나더라고. '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너무 적나라한 지적이라 반박할 말이 없어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고는 섬뜩했다.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의 감정 배출 패턴이었다.
엄마는 날씨 같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우울했다가, 어느 날은 기분이 맑았다가, 어느 날은 폭풍처럼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어린 시절 나의 최대 관심사는 외모도, 친구도, 연예인도 아닌, '엄마의 기분'이었다. 엄마는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에게 퍼부었다. 옆에 없을 때는 전화로, 상대가 듣든지 말든지 본인 말만 끊임없이 토해냈다. 엄마와의 대화는'엄마'만 있고 '나'는 없었다. 듣기가 괴로워 전화를 끊고 휴대폰 배터리를 아예 빼버리면 음성사서함은 엄마의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살고 싶지 않다.'라는 협박으로 시작해 '딸아, 내가 못나서 그렇다.'라는 자책으로 끝났다. 늘 그러했다. 나는 엄마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감정을 내놓기도 전에, 엄마는 '미안해'라는 결론적인 입장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허탈하고 억울했다.
그때 내 나이가 14살. 어린 소녀였다. 그 소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불편한 감정을 지우는 일이었다. 거기서 반박하거나 나한테 왜 이러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무서웠지만 나에겐 엄마가 세상 전부였으니.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주로 듣고 있다. 불편한 상황이 오는 걸 미리 막기 위해 (누군가 나에게 엄마처럼 함부로 하지 못하게) 자못 진지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누군가 농담을 치면 받지를 못하고 경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서 회사생활이 힘들었구나 싶다.
' 여보. 나는 왜 이리 진지할까, 왜 사람들이 던지는 농담을 못 받고 경직해서 오히려 상대방을 민망하게 할까.'
' 그 시절에 소녀 혜진이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잖아. 그 시기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그런 감정(엄마가 퍼붓는 감정)을 다 처리해야 했으니 늘 진지하고 생각하고 그런 태도로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잖아. 이제부터는 좀 웹툰도 많이 보고 재밌는 예능 프로도 좀 보고 그러자.'
신랑의 말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전에는 막연하게 '엄마 탓'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꺼내 마주하는 이유는 나를 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내가 풀지 못한 감정을 아이에게 대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에게 감정이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엄마 얘기를 꺼내면 난 여전히, 아직도 손과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이미 마음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으리라.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산다. 주위 사람들, 심지어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다. ' 딸이 그러면 안 된다. 네 엄마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라. 좋은 게 좋은 거다. 다들 그렇게 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고자 엄마와 관계를 잘랐다. 엄마와 관계를 끊는 과정은 다시 태어나는 고통이었다.
자책(착한 딸이 되지 못한)으로 뒤덮인 내게 단 한 사람이 괜찮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준다. 착한 딸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혜진이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해준다.
그때 나는 이 사람과(신랑) 평생을 함께 할 거라 다짐했다.
이제 부모는 더 이상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도, 내가 의존해서도 안 되는 존재란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앞으로 이것만큼은 아이에게 꼭 가르쳐 주고 싶다. 감정 표현을 '잘'하는 것에 대해.
_2018.11.21
잘 운다거나 퉁퉁거리거나 화끈한 사람. 또는 화를 벌컥 내곤 하는 사람은 자기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일까? 아니다. 우리는 '감정 표현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다. 감정 표현에 대한 개념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 감정 표현을 잘한다는 것은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훼손,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인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억압하고 쌓아두지 않고 타인에게 적절히 알릴 수 있으니 본인도 편안하고 타인에게 이해받기도 쉬울 것이다. 그의 주위 사람들도 그가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적 잘 알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해로 인한 불화, 본의 아니게 주고받는 상처도 적어질 것 아닌가.
진짜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공연히 퉁퉁거리고 짜증을 내거나 참고 참다가 어느 순간 화를 버럭 내는 경우 등은 오히려 자기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생긴 '부적절한 감정 표출'이라 할 수 있다.
_ 정혜신,『당신으로 충분하다』,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