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의 힘.
오늘은 보이지 않는 힘, 기적에 관하여 글을 쓰고 싶다.
때는 하늘이 새파랗게 청명한 10월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니모와 마을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스쳐 지나는 동네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이 이상하리만큼 산만했다. 그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굳이 말로 '나 화났다'라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주변으로 스멀스멀 퍼지는 그 스산하고 묵직한 기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동네에 내려앉았다.
'니모야, 우리 앞집 이준이네 놀러 갈까' 하고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뒤통수를 향해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가 소리친다.
" 지금 사고 났어요! 그 집 아기. 단지 주차장에서 사고 나서 막 병원에 실려갔어요."
그랬다. 몸집이 커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21개월 아가 이준이가, 어제까지만 해도 아장아장걸음으로 우리 집 마당까지 걸어와 모래를 만지고 가던 이준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거다.
옆집 아저씨의 말이 귀에는 꽂혔으나 머리로는 상황 파악이 안 되어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다친 걸까, 왜? 왜 사고가 났지? 그럴 리가 없는데? 이준이 엄마는 어떡하지, 나는 뭘 해야 하지.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이준이는 머리를 크게 다쳤고 뇌 수술을 해야 했고 지금은 혼수상태라 중환자실이다.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기도를 해달라. 매일같이 불 꺼진 앞집을 바라보며, 이준이 집을 지나갈 때마다 두 손을 모아 평소엔 하지도 않던 기도를 했더랬다. 나와 신랑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재준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했다.
한 달이 지났다.
이준이는 세 번의 수술을 견뎌내고 위험한 고비도 잘 넘겨 중환자실에서 일반 소아병동으로 옮겼지만 아직 사람을 알아보거나 눈을 맞추지는 못한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났다.
이준이가 퇴원해서 집에서 재활치료를 매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했다. 하지만 한쪽 눈이 안 보이고 전처럼 걷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 며칠 전, 이준이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걸어 다니는 이준이와 함께.
무슨 말이 필요 있겠는가. 따뜻한 보이차를 한잔 따라주고는 가만히 옆에 앉았다. 내가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이준이 엄마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가만가만히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말을 하던 도중 감정이 북받쳐 눈이 눈물을 삼키는 것을 수차례 보았고, 나는 그 말을 듣다가 고통스러워 눈을 여러 번 감아야만 했다.
중환자실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어요.
"이준이 어때?"
"이준이? 가망 없지."
말 그대로 절망이었죠.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는 진짜잖아요. 의사들은 우리한테도 겁을 많이 줬거든요. 뇌의 3분의 2가 뭉개져 손대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혼수상태라 다시 깨어난다 해도 앞으로 식물인간으로 지낼 수도 있다. 장애아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도 살게만 해달라고,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매일같이 기도했어요.
처음에는 왜 우리 아들이냐,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왜 하필 우리냐며 신을 원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딱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포기가 아니라, '아, 신이 알아서 좋은 방법으로 하실 것 같다.'는 믿음.
이준이의 상황이 어떻든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오더라고요. 그때 이준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며 하루하루를 지냈어요. 이준이는 분명 일어날 거다 하면서요. 그게 정말 어려운 거거든요. 당장 생사를 오가는 아이 앞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기도하는 거. 신은 있다고 믿고 기적을 믿는 거. 그게 참 어려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이준이를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이준이에게 이준이가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음을 보여주는 일.
의사가 퇴원하는 이준이를 보며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기적. 보이지 않는 힘이 분명 있다는 거죠.
그러니 니모 엄마도 그렇게 마음먹었으면 좋겠어요.
니모 아토피 때문에 지금 많이 속상하잖아요. 그래도 니모를 믿고, 니모가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고 그 믿음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니모는 그 믿음으로 더 건강하게 이겨낼 거예요.
종교가 있던 없던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간절해지면 절로 기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다.
하지만 그 힘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미신(迷信)으로 취급된다.
하나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이 더 세다고 이준이 엄마가, 아니 저기 내 눈으로 걸어오는 이준이가 보여준다.
_ 앞집에서 걸어 나오는 재준이, '기적'같은 아이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