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어정쩡한 사람이다.
무언가 하나에 몰입하지 않으려 애쓰며, 이도 저도 아닌 발 하나만 담그려는 어중간한 마음가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굳이 예를 들자 하면, 최근 들어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에 숟가락을 하나 올렸다. 올해 다섯 살이 된 니모는 동탄에 오니 때마침 유치원 비리들이 속속 터져댔고 그 덕에 갈 곳이 없었다. 실상 비리 문제뿐만은 아니었고, 음식 반응이 심한 아이라 유기농이 아닌 음식에는 걱정이 앞서 마음 놓고 보낼 곳이 없었으리라. 어떻게 평생 유기농 재료만 먹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끔씩 밖의 것들을 조금씩 먹이면 마치 훈장처럼 니모의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으니 나의 걱정은 사치도 아니었다.
무튼, 신랑과 나는 전부터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니모가 마음껏 뛰어놀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리하여 나는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에 발기인이 되었으나 우리나라에는 협동조합 유치원이라는 사례가 없다 보니 무지해서 종종 머리가 아팠다. 하루 종일 니모 데리고 있기도 벅차다는 나름의 핑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더랬다.
두 번째로는, 글쓰기에 관한 일이다.
니모의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무너질 듯한 마음을 세우려 시작한 글쓰기가 오히려 내겐 큰 치유의 시간이 되었는데 블로그에 하나둘씩 글을 올릴 때마다 몇몇 사람들이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고 기분 좋은 말들을 해주었다. 그 말에 또 나는 '아,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나 봐' 하는 착각에 앞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막상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생각하니 살아갈 말들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꾸준히 쓰던 글은 쓰지 않고 책만 냅다 사들였다. 결국 사들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식탁 위에 쌓아 올리고는 더욱 혼란스러워진 마음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뒷짐을 쥐고는 방관자의 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중국어 번역이다.
중국어의 끈은 놓고 싶지 않고, 혼자서 선한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신청한 중국 원서 강독 온라인 스터디. 원서를 들여다보고 우리말로 풀어낼 시간이 충분함에도 나는 굳이 강독 마감 하루 전에 벼락치기로 번역을 끝내서 까페에 업로드를 한다. 그것도 전체 번역이 아닌, 부분 번역만.
어느 것 하나에도 끈덕지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에게 오늘은 준서 님의 시를 읽어주며 어정쩡한 마음을 합리화시켜본다.
Nothing is all to me
아무것도 내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전부 같은 일부의 것들아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게 닿아온 많은 일과 사람을
이리저리 사랑하고 경험하며
매몰되지 않음이고, 고여 있지 않음이다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부족함의 영역이 아니고
풍요로움의 영역이다
『맑음에 대하여』, (독립 출판물), 강준서,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