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둘이 보낸 시간.
긴 긴 고민 끝에, 정말 둘이서 괜찮겠냐는 신랑의 걱정을 잘 달래어 마음을 굳혔다.
한 달간 아이와 공기 좋은 남원 산골마을에 머무르기로 말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 곳에서는 아침이면 큰방 커튼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와 새들의 지저귐에 눈을 뜨고, 저녁이면 집 근처 저수지에 모여든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아이는 여전히 밤마다 간지러운 다리와 씨름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현관문을 열어주면 그저 좋다고 마당으로 잽싸게 뛰어나간다.
그 사이에 나는 아침을 아침밥을 준비하고, 빨래를 모아 휘리릭 세탁기에 넣는다. 햇빛에 이불 널기가 소원이었는데 아이 아토피 덕분에 소원성취가 너무도 빨리 이뤄졌다. 수원에 있을 때는 아이 피부 상처 들여다보는(오늘은 또 어디에, 얼마나 상처가 번졌나) 시간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산, 나무, 꽃, 길 고양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나가고 싶으면 실내화 질질 끌고 잠옷바람 그대로 아이와 마을을 누비고, 쉬고 싶으면 어디서든 철퍼덕 주저앉아 자연 속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기운 덕분일까. 아이와 단둘이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지낸다는 것에 앞섰던 두려움과 불안은 이곳에 오자마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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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 온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머리맡에 둔 시계를 보니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6시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서 새들의 지저귐으로 바뀌는 새벽녘.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면 산속의 짙은 공기가 들어온다. 그제야 집안의 공기는 흐른다.
이곳 공기에 색깔이 있다면 그건 아마 초록색이 아닐까. 혼자서는 무서워서 사흘도 못 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여기 너~무 좋아. 살고 싶어"라는 나의 반응에 남편은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매일매일 온몸 구석구석 햇빛을 쬐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아이도 이곳이 꽤 맘에 드는지 집보다 이곳이 더 좋다고 얘기한다.
" 우와 엄마, 구름이 기차처럼 간다."
" 엄마. 달님이랑 별님이가 옆에 있어서 하나도 안 무서워."
" 엄마. 꽃이랑 바람이랑 나무가 (피부 간지럽지 않게) 호~해준대."
아이는 부쩍 '자연 단어'를 감탄하며 내뱉는다.
그동안 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이 눈앞에 다가오니 신기한가 보다. 특히 길을 가다가도 불쑥불쑥 보이는 벌레, 곤충들을 보며 '이건 머야? 저건 머야?' 하며 물어보는 통에 한참을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이곳에서 자연스레 자연을 배운다.
사람들 말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이곳에는 그 누구도 아이를 안쓰럽게 혹은 이상한 눈빛을 던져가며 피부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다.
주름이 깊게 패인 백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만이 그저 아이를 향해 예쁘다고 하회탈 같은 미소를 보낼 뿐.
좋다.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