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로 살아가는 나의 연대기
글을 지웠다가 썼다가 여러 번 반복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릴 이유까지 인터넷상의 모든 사람이 알 필요가 있을까?
'우리집은 콩가루로 만든 집이에요!' 하고 너무 떠벌리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환경을 택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할까' 원망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적어도 느꼈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연약하지 않았다. 우리집은 수저 계급 이론에 따르면, 흙수저도 못됐다. 이건 뭐 요플레 수저다. 나는 돈이 없어서 잘 다니던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슬픔은 여름 방학 때 친구들이 다 같이 롯데월드에 갈 때, 나는 갈 수 없었다. 돈 3만 원이 없어서. 엄마는 가정주부로 아빠한테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형편이라 나의 놀이 생활에 지원해 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말하면 날 보내줄 수 있었는데 그걸 말해서 돈을 받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나를 내보내기가 싫었다는 걸. 내가 나가면 누가 동생들을 보겠는가? 우리 엄마는 내가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고,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집에 들어와야 했다. 내가 여자여서 그런 걸까? 세상이 위험해서 보호하고 싶었다기에 엄마의 외출 허락은 너무도 선택적이었다. 저녁 8시에도 심부름은 잘 내보내셨다.
우리집은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콩가루 집안 같다. 드라마 작가님들이 우리집 들여다보고 썼나 싶다.
'화목한 집안에서 자라 1남 2녀 중 장녀로.'처럼 시작하는 진부한 자기소개서처럼,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이며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아빠와 심각한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신경질적이고 무기력한 엄마 밑에서 자란 나.
딸 특유의 엄마에 대한 동정과 감정 이입으로 나의 사춘기는 나에게 시달려 볼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우리 할머니는 한여름에 장롱에서 멀쩡한 겨울 이불 잔뜩 꺼내와서 아무 이유 없이 다리게 하시는 분이셨다. 김장은 기본 1박 2일이고, 제사와 차례는 일 년에 10 차례가 넘었다.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할머니 댁에 가지 않으면 전화를 계속하셨고, 할머니 댁에 가면 온갖 요리, 빨래, 청소와 궂은일을 시키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불쌍했다. 내 친구들의 엄마들은 그렇게 사시는 분이 없었으니까. 내가 엄마를 불쌍하게 여길수록 나는 딸에서 엄마의 친구로 위치가 바뀌었다. 그렇게 점점 나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에서 누군가를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로 자라 갔다. 정신없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등바등 취업해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나도 더 이상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회사만 가도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자기들 분풀이를 해대는데 이제 집에서까지 그 노릇을 했다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와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충고해도 엄마는 듣지 않는다. 엄마는 아빠와 할머니가 만든 불편한 세상에서 족쇄를 차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제 그만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