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 미술관

세상의 화가들(3)

by 키작은 울타리


얼어붙은 산길을 한참이나 걸어올라 만난 것은 흰옷을 입은 백발의 자작나무들이었다.

몸 곳곳에 난 온통 옹이투성이 숲은 마치 상처 입은 영혼들이 모여 사는 세상 같았다.

나무들은 숲 길목을 도인처럼 버티고 서서 숲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까만 옹이의 꾹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은

"니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밤마다 공원에서 몰래 꽃을 꺾어 날랐다고,

또 절뚝거리며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리 다친 비둘기에게 등을 돌렸다고,

게다가 또...

마치 검색대 앞에 선 것처럼 나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양심고백을 하고 나서야

숲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무들이 수피를 똘똘 말아가며 스스로 옷을 벗고 있었다.

드러난 하얀 속살에 산수화 속 산봉우리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것은 숲길목에서 나를 잔득 쫄게 했던 부릅뜬 옹이눈이었다.



숲은 온통 하얀 자작나무에 산수화가 그려진 거대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 아이들은 흰 눈 덮인 그림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연인들은 영화 속 한 장면의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이 된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은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가는 입장료였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누구나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그새 어둠이 햇살을 밀고 들어와 사람들을 숲 밖으로 돌려보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버릇에 또다시 발동이 걸리고 말았다.

몇 시간 전 숲으로 들어갈 때 했던 고백을 잊고

나는 부러진 자작나무 가지를 숲에서 몰래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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