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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ug 05. 2022

엄마의 환갑여행

올해 여름, 엄마와 아빠가 내가 사는 미국에 방문했다. 부모님의 이번 미국행은 조금 더 특별했다. 내가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1년에 한 번씩은 자식과 손주들을 보러 미국에 방문하시지만, 이번은 보다 '목적'이 확실한 방문이었다.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엄마의 이야기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아빠가 둘째 아들이어서 좋았다던 엄마는 결혼 후 딱 3개월만 신부수업을 시켜주겠다는 시어머니의 제안으로 시작된 시집살이를 허니문 베이비(=나)가 생기는 바람에 26년이나 지속하게 됐다. 대개 첫째 아들이 부모님을 부양하던 그 시절, 엄마는 둘째 아들과 결혼한 자신이 한 평생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어머니와의 26년 한집살이는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나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인 최복년 여사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소문난 최씨 고집을 몸소 보여준 그녀는 심장병이 걸린 이후로 서러운 일이 많아졌고, 모든 서러운 일의 근원은 며느리였다. 


엄마는 시어머니의 삼시세끼를 책임지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느라 하루도 허투루 쓴 적이 없었다. 때때로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원망을 묵묵히 견뎌낸 엄마의 젊은 시절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억울한 스토리로 가득하다. 시어머니를 2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빠는 엄마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엄마의 정성에 하늘도 감복한 것일까. 엄마의 인생은 40대 중반 이후부터 순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의 일이 술술 풀렸고, 자식들도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나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유학간 이후부터 엄마와 아빠는 단 둘이 살기 시작했다. 신혼에도 단 둘이 살아본 적이 없던 엄마와 아빠는 그제서야 제 2의 신혼을 즐길 수 있었다. 봉양할 부모도, 양육할 자식도 없이 오롯이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오늘날은 과거의 힘든 시간들을 보상해주듯 다디달아 보였다.  



한 평생 우리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엄마의 환갑. 그랬기에 난 더욱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남편과 반년 전부터 엄마의 환갑 여행지를 고민하다가 엘에이 인근 멕시코 '로스 카보스'를 목적지로 결정내렸다. 엘에이에서 불과 2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 갈 수 있는 휴양지.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격인 로스카보스는 비행거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도 최적의 여행지가 아닌가 싶었다. 가깝고, 이국적이고, 휴양할 수 있는 곳. 로스카보스가 엄마의 환갑 여행지로 낙찰됐다.



멕시코 로스카보스로 향하는 날.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 단체 여행을 떠날 때 남편의 7인승 SUV는 빛을 발한다. 남편, 나, 아들1, 아들2, 엄마, 아빠까지 총 6명이 한 차에 타고 캐리어 3개를 트렁크에 실었다. 모든 가족들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미국에서 시차 적응 하느라 피곤함에 젖어있던 엄마와 아빠는 막상 여행을 떠나는 날이 되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부쩍 자란 아이들도 여행가는 즐거움을 알기에, 저희들끼리 차 안에서 유치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킥킥댔다.

공항 인근 호텔 주차장에 차량을 장기주차 하고,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했다. LA 국제공항에 도달하자 미국을 떠나 타지에 간다는 실감이 났다. 최근 몇 년간 공항은 자주 안 왔을 뿐더러 우리 가족에게 LA 공항은 인천공항에 가는 출발지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목적지가 한국 인천이 아닌 멕시코 로스카보스이므로, 아예 낯선 곳을 향한다는 설렘이 증폭했다.

1인당 10만원 정도씩을 더 내고 Comfort 좌석을 끊었는데, 막상 비행기 좌석에 앉아보니 옳은 결정이었다고 과거의 나를 셀프 칭찬했다. 컴포트 좌석이란 비즈니스석과 일반석의 중간 좌석으로 대개 비상구에 가까운 1열, 2열에 위치해있다. 2시간 거리라 비즈니스석을 끊는 것은 낭비 같았으나 환갑여행인 만큼 엄마와 아빠에게 편한 좌석을 선사하고 싶었다. 고로 컴포트 좌석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단 2시간 만에 멕시코 땅에 닿았다. 서울에서 제주도를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여행이었는데, 막상 로스카보스 공항에 오니 동남아에서 느꼈던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남아 나라들을 여행간 게 언제적인지 가물했다. 서양 국가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동남아 나라들에 놀러가야 비로소 외국임을 실감할 수 있다. 로스카보스는 묘하게 미국과 닮았으면서도 동남아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가 택한 호텔은 하얏트 지바(Hyatt Ziva).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20 정도 후에 도착한 호텔 로비. 로비 안쪽으로 걸어가면  멀리 파란 바다 뷰가 펼쳐진다.


"우와."


가족들 모두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LA 인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바다 풍경이지만, 그럼에도 타지에서 보는 바다는 여행 기분과 섞여 또다른 감격을 가져다줬다.


로스카보스에 여행 가는 대다수의 한인들이 찾는 이곳은 '올인클루시브' 호텔이다. '올인클루시브'란 말 그대로 식사, 음료 등의 모든 서비스가 호텔 값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는 생에서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처음 방문했기 때문에 호텔 내에서 공짜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 감격했다.


그러나 공짜 좋아하다 큰코다친다. 첫 음식점으로 간 일본 음식점 '도조'(Dozo)에서 우리 가족은 돈 줘도 먹고 싶지 않은 음식들을 마주했다. 멕시코 현지인들이 만든 튀김과 스시롤은 왜 이리 퍽퍽하고, 느끼하고 맛이 없을까? 미국에서 여행 중 일본음식점에 가면 대개 큰 실패가 없는데, 멕시코에서는 대실패...


그러나 올인클루시브 호텔이 아니던가. '도조'에서 재빨리 나와 우리 가족은 바닷가 앞에 위치한 'La Hacienda Beach Grill'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의 음식맛은 이전보다는 좀 나았다. 썩 맛있다고 추천할 만한 곳까지는 못된다. 다만 귀와 눈이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라이브로 한 현지 여가수가 올드 팝송을 불렀는데, 엄마는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이들은 테이블 옆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파도의 출렁임을 한없이 바라봤다. 여행 첫날의 노곤함이 싹 가시는 것만 같았던 순간.


여행 첫날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_CUqAQr1E&t=1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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