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숨 쉴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LA시의 자택대피령으로 집콕 생활만 어느덧 3개월 차. 장보러 나가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집에서만 보내는 생활의 연속이다. 마스크없이 바깥 공기를 맡지 못하는 삶이 계속되자 남편과 나는 거의 창고 용도로만 사용되던 베란다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를 좀 어떻게 변화시켜볼 수는 없을까...?'
베란다를 미니 테라스로 변신 시켜보자는 생각이 들자 실천력 강한 남편은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어느 토요일 오전 남편은 건축자재 및 인테리어 용품을 판매하는 '홈디포' 매장에서 2인용 테이블과 의자를 사왔다. 그러고는 베란다에 지저분하게 놓여있던 잡동사니를 싹 치우곤,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단지 테이블과 의자, 그 두가지 물건을 가져다 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두가지 물건은 '베란다'를 '테라스'로 변화시켰고,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을 적어도 2배 이상 높여줬다.
가끔씩 장보러 외출할 때에도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했으므로, 최근 바깥 공기를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던 터였다. 우리가 만든 테라스에서는 마스크 없이 바깥 공기를 실컷 쐴 수 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마스크없이 바깥 공간에서 시간을 마음껏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이런 식의 감정을 느끼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여전히, 때때로 신기한 기분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우리들의 일상이 비현실적이다.)
몇 평쯤 될까, 남편에게 묻자 사람 한 명이 누울 공간을 1평으로 치면 이곳은 한 2평쯤 되지 않을까, 하고 답했다. 2평의 테라스라...단 2평으로도 사람은 숨 쉴 공간을 확보할 수 있구나 싶어 마음 한 편이 좀 찡했다.
집에 작은 테라스가 생긴 이후, 며칠 간은 하루의 모든 일과를 테라스에서 보냈다. 일어나자 마자 테라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아이와 식사를 했다. 테라스에서 재택근무도 했고, 멍하니 바깥을 쳐다보기도 했다.
주말당직을 해야했던 어느 일요일에는 테라스로 노트북과 빵을 가지고 나갔다.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일을 하는 기분이 끝내줬다. 집에서 일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울음소리, 징징대는 소리 등에 노출돼야 해서 집중이 힘들었는데, 테라스에 나가 문을 닫으니 철저하게 나만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어느 밤에는 남편과 와인을 홀짝이는 시간도 가졌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두고 남편과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2개월간 레스토랑에 발도 못 붙였었는데,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니 우리만의 작은 야외 술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남편이 말했다.
"진작에 이렇게 바꿀 걸 그랬어."
그러게 말이다. 진작에. 이곳에 살게된 지 어느덧 만 2년째다. 2년간 방치되어 있던 베란다였다. 코로나19가 터지고서야 집에서 가장 쓸모없는 곳으로 여겨지던 집의 일부분이 가장 의미있는 곳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공간의 효용성은 공간 그 자체의 특성보다도 시의성에 더 의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2평 테라스가 가져다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은 숨통이 트일만한 작은 공간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클리셰가 정확히 가슴이 꽂힌 경험이었다. 코로나19가 알려준 소중한 깨달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TT_p-pk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