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알아본 성격
어린 시절 밥 아저씨의 그림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따라 그리는 일이 참 좋았다. 내게 스케치북과 물감만 쥐어주면 엄마, 아빠는 육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난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브라운관 밖에서 지켜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아이였으니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 아빠가 외출한 집에 동생과 둘이 남아 밥 아저씨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그림을 그리던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사촌 오빠를 따라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미술학원에 다녔지만 불행하게도 내게 그림 그리는 재능은 없었다. 함께 미술학원을 다녔던 사촌오빠는 당시 학원의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진지하게 미술공부를 이어나갔고,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현재도 미술 관련 직업으로 밥벌이를 한다. 하지만 난 어릴 때 이후로 미술과는 담 쌓고 살았다. 좋아했지만 재능이 없었고, 아무리 그려도 제대로 된 아웃풋이 안 나왔기에 그림 그리기에 대한 흥미도 점차 잃었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 4살이 된 아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보니 아들에게 재미난 놀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스케치북, 물감 세트를 아마존을 통해 구입하게 됐다. 아들의 물감세트를 온라인을 통해 뒤적이다 보니 어릴 적 그림을 좋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나도 다시 무언가를 그리고, 칠하고 싶어졌다. 덩달아 내것까지 물감세트를 주문하게 됐다.
유튜브를 보고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요즘 시대에는 밥 아저씨 같은 사람이 유튜브에 넘쳐나는 듯 했다. 이토록 재능 많은 전문가들이 공짜로 그림 그리기를 알려주니 고마운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영상 하나를 골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른 영상은 벚꽃 그림. 이상하게 꽃 그림 그리는 게 어릴적부터 좋았다. 초등학교 때 그렸던 해바라기 그림이 아직도 생각이 날 정도다.
아크릴 물감으로 쓱쓱 배경부터 칠하고 10분 말린다. 빨리 꽃잎을 그리고 싶은데, 10분 기다리는 일이 곤욕이었다. 참을성이 없는 나에게 기다림은 쥐약이다. 10분을 차마 채우지 붓을 집어 들어 꽃 잎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대략 비슷한 물감 색을 골라 붓으로 쓱쓱 터치를 해댔다. 고민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쓱쓱. 나의 디테일하지 못한 고민없는 붓놀림의 아웃풋은 어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상만큼 예쁘게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들은 몇 번이나 나를 불러 SOS를 청했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도와줘."
"엄마, 망치면 어떡하지."
"혼자 못하겠어. 이리 좀 와봐."
망쳐도 된다고,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라고 했지만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조금 더 완벽하게 무언가를 그려내고 싶어하는 모습에 난 의아했다. 어릴 적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도 개개인의 성격이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쓱쓱 붓을 아무렇게나 움직이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붓 터치 한 번에도 온갖 생각과 정성을 쏟아 붓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림을 그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어떤 일을 선택하는데 큰 고민이 없는 편이다. 끌리는대로 선택을 툭 해 버리고 그 후에 수많은 노력과 고난과 역경을 겪어낸다. 선택 과정에서 큰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으로 피곤한 결과가 따라올 때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성격은 바뀌기가 참 힘든 영역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체감하게 된다. 똑같이 내 배에서 나온 아들들이건만, 두 아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두 아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나의 양육방식에 따라 두 아이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글쎄. 본인이 가진 상태에서 좋은 쪽으로 변화해갈 수는 있겠지만 큰 기본틀은 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테다.
그림을 그리며 새삼 나의 MBTI로 치자면 엔프피(ENFP) 유형에 속하는 스스로의 기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민없고, 거침없고, 세심하지 못한 성격. 결과물이 어떻든 간에 이 정도면 됐지 뭐, 라고 여겨버리는 태도. 꽃꽃이를 할 때도 그랬다. 선생님을 따라 한 송이 한 송이를 정교하게 플로랄폼에 꽂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는 자유분방하게 내 마음대로 꽃꽃이를 해버린다. 그리고서 뭐 꽃은 어떻게 꽂아도 이쁘지 않나? 허허...하며 내가 만든 결과물에 만족한다.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계량 스푼을 써가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는 나의 남편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대량 눈대중으로 재료들을 때려넣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 요리 결과물은 늘 다르다. 맛있을 때도 있고, 맛없을 때도 있고. 요리 고수도 아니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만드는 내 요리의 맛은 일정하지 않다.
때때로 이런 나의 '디테일하지 못함'이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고민할 때도 있었다. 조금만 더 내가 예민하고 디테일한 사람이었다면 공부도 깊이있게 했을 테고, 인생을 살며 빙빙 멀리 되돌아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격이란 건 참 바꾸기가 힘든 부분이다. 글을 쓸 때 그나마, 유일하게 나의 디테일함이 발현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매일 수없이 기사를 써내다 보니 점차 또 대강 글을 써내는 내가 튀어나와 버릴 때가 있다. 긴장감을 놓아 버리는 순간 무언가를 고민없이 대충 해버리는 성향이 글쓰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살짝 자괴감도 든다. 또 이렇게 나를 이기지 못하고 내 스스로에게 져버렸구나 싶어서. 어쩔 수가 없다. 더 많은 글을 써내서 어느정도 대강 해도 꽤나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수밖에. 스스로를 갈고 닦는 길만이 답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