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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pr 05. 2021

삶의 모든 순간에서 '렛잇고'

집착을 버리는 삶의 태도에 대하여

만 4살인 아들은 집착이 유독 심한 아이다. 내가 느끼기에 아들의 집착 정도는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넘길만한 평균치 보다는 한참 위에 있는 것 같다.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어김없이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리친다.  


시간을 되돌리는 수밖에 없어!!! 되돌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들의 집착은 대개 이런 것이다. 아들은 여전히 애착인형들과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함께 하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예외는 없다. 어느 날 대변을 보고 아들이 내게 묻는다. “나 애기들(아들의 애착인형) 데리고 쌌나?” 때때로 아들이 깜빡하고 인형을 두고 화장실을 갈 때까 있는데, 이 때 나도 모르게 진실을 답하면 크게 낭패를 본다.  


“아니, 애기들은 밖에 있는데.”


“으앙!!! 시간을 되돌려!!!! 되돌리라고!!!”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울음은 결코 짧지 않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제 맘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아들은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한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아들이 잘 알고있다. 다만 이렇게 때를 쓰지 않고는 본인도 견딜 수 없는 것 같다.


어느날, 아들이 무언가에 집착하며 여느 다른 날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고, 난 말했다.


"겨울왕국 영화 기억하지. 거기서 '렛잇고' 노래 부르잖아. 일상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해. 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렛잇고' 해봐. 엄마 따라해. 숨을 후, 후,  내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렛잇고!!"


겨울왕국 영화를 몇 번이나 시청했던 아들에게 그 말이 조금은 먹혔다. 아들은 울음을 살짝 그치고 묻는다. "왜 렛잇고 해야해?"


"삶이란 늘 내 마음처럼 흘러가진 않거든.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 그럴 때 마다 울 수는 없잖아. 그러니 렛잇고 해야지."




사실 아들에게 한 말은 그 누구보다도 요즘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렛잇고 하는 마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어떤 일에 집착하는 건 어린 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 이루고 싶은 무엇에 대해 집착할 때가 더러 있다.  


어떤 일에 집착하게 되면, 곱씹고 또 곱씹고, 그렇게 후회와 회한의 마음을 즐기는 수준에까지 다다르게 될 때까지 우려 먹는다. 현재의 순간을 살지 못하고 과거의 나를 질기게도 붙잡고 있다.


집착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직업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젊음과 자유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탐하는 일, 그게 집착이 아니면 무엇일까. 어차피 가지 못한 저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닌데도 그냥 놓아주기에는 마음이 허해서 자꾸 마음 속 '재생 버튼'을 눌러보게 된다.



심리학 저서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불안, 우울의 근원이라고 말이다. 무언가에 집착을 하면 마음은 힘들어진다. 상황은 바뀌는 것 하나 없는데 괜시레 마음만 아픈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떤 무언가에 집착해 마음이 힘들 땐, 생각의 회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어라 나 집착을 하네' => '내일 길 가다 교통사고 죽을 수 있는게 인생이다. 오늘만 해도 총격사고 기사를 몇 번이나 봤더라' => '인생사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미래에는 너무나 그리운 과거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바꾸고 '감사'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사그러 든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감사하기에도 아까운 나날임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ENFP 중에서는 유독 '해피 바이러스'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ENFP들 중 긍정회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일이 생겨도 긍정회로를 마구 돌려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나 할까.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갈 뿐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날 기다릴지는 전혀 알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서둘러 속단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저 '렛잇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러니 삶의 모든 순간에서 '렛잇고'

렛잇고라는 주문은 그 누구도 아닌 날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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