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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07. 2020

MBTI 궁합이 '파국'인 우리 부부가 잘 사는 이유

홀로 50점인 우리가 둘이 만나 100점이 되었네

최근 우리 부부는 나란히 MBTI 테스트를 했다. 나는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남편은 ISTJ(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가 나왔다. 어쩜 알파벳 하나가 겹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서로 반대라는 건 연애 때부터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알파벳 하나 겹치지 않을 정도로 다른가’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결과였다.   


내친김에 MBTI 유형별 궁합을 찾아보니 ENFP와 ISTJ의 관계는 ‘파국’이었다. 부가설명으로 ‘진짜 궁합 최악! 지구 멸망의 길’이라는 문장도 덧붙여져 있더라는.    



??  



우리 부부는 연애 3년, 결혼 5년 통합 8년간 너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남편은 자타공인 로맨티스트고, 난 주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의외로(?) 현모양처’였는데 이런 우리의 궁합이 성격만 놓고 봤을 때는 파국을 면할 수 없는 커플이라니.  



당연 MBTI 궁합 결과는 일종의 통계치 같은 것, 맹신할 게 못 된다. 사주나 타로 결과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묻게 됐다.  



“MBTI 궁합이 파국인데다 성격이 정반대인 우리 부부가 잘 사는 이유는 뭘까.”  



  



남편과 나의 다른 점을 어디서부터 나열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다른 사람이어서. 음악, 음식, 영화 등등 모든 부분의 취향이 달랐다. EDM 음악을 즐겨 듣는 취미생활이 DJ였던 남편, 인디 가수들의 노래 가사 하나하나 음미하는 나. 스테이크파인 남편과 삼겹살 매니아인 나. 액션영화광인 남편과 로맨틱 영화만 즐겨보는 나. 취향에 있어서 우리 사이에 접점은 없었고, 그때그때 서로의 취향을 맞춰주며 데이트를 해왔고, 결혼 후에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있다.   



결혼 생활 중 문득 우리의 다름을 극대화로 느꼈던 건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였다. 침대 옆 놓인 서랍에서부터 우리의 다름은 드러났다. 내 서랍 위에는 책이 5~10권씩 쌓여 있는 반면 남편의 서랍 위는 심플하다. 핸드폰 충전기, 애플워치 거치대. 이 두가지가 전부다. 어느 날 문득 잠들기 전 책을 읽는 나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남편의 모습을 번갈아 보다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아날로그형 인간과 디지털형 인간이 결합했을 땐 이렇게 다른 삶의 양식이 동시에 공존하는구나 싶었다.   


 

중요한 점은 남편과 내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혼생활 초반에 남편이 힘들어 했던 부분은 나의 지저분함이었는데, 난 태생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메일함을 들여다 보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 있다던데, 내 이메일 수신함은 읽지 않은 이메일로 가득하다. 그에 반해 남편은 즉각즉각 필요한 이메일을 읽고, 필요 없는 이메일은 삭제하는 사람으로 수신함은 언제나 깨끗함 그 자체다.   



때문에 결혼 후 우리는 화장실을 따로 썼다. 안방 화장실은 남편이 거실 화장실은 내가 쓰는 걸로 합의를 보고 서로의 공간을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옷 방도 반으로 나눠서 남편은 자신이 쓰기로 한 영역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내 쪽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깔끔함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덕분에 늘 정리정돈 된 집에 살 수 있어서 기쁜 편에 가까웠다. 남편이 나에게 별다른 지적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깔끔함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았고, 다만 내 쪽에서 조금은 눈치가 보여 평소보다는 정리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정도였다. 남편의 경우에는 상대방과의 공간을 분리해 자신의 공간을 어느 정도 확보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싸움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남편이 ‘정리정돈을 더 깨끗이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나는 ‘이게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맞섰더라면 우리의 결혼생활이 순탄할 수는 없었으리라.   



위의 단적인 예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다름이 연애를 하면서, 그리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불편하게 다가온 적은 거의 없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반대 성향을 이해했고, 최대 접점을 찾아 생활했다. 다름에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오히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각자의 부족함이 상대방으로 인해 채워진 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서로가 가진 장단점이 완벽하게 반대 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홀로였다면 50점에 불과했을 우리는 서로를 만나 100점이 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돌아와서 MBTI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자면,


내성적(I)인 남편과 외형적(E)인 내가 만나 집 안의 적당한 생동감이 돌았고,


현실적(S)인 남편과 창의적(N)인 내가 만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을 이뤘고,


논리적(T)인 남편과 감정적(F)인 내가 만나 머리와 가슴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은 채,


가정이 나아갈 방향을 계획적으로 판단해(J) 자유롭게(P)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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