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프피(ENFP)의 행복
한 친구는 술을 마시던 중 인생이 심심하다고 한숨을 푹 쉬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마치니 더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고 했다. 매너리즘이 온 것 같다고도. 친구는 '너도 그렇지,' 라며 내게 동의를 구했는데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내게 세상은 재미난 곳이었기에.
친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번아웃이 오고, 때때로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인생은 아름다워'라며 엔프피(ENFP) 특유의 '대가리꽃밭'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워킹맘이 된 후론 인생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엄마의 삶과 직장인으로서의 삶,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며 하루하루 사는 일은 예상했던 것 보다도 힘겨웠다.
그럼에도 난 이 삶이 재미있다. 왜일까.
삶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력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상황에 처해야지만 삶이 재미있는게 아니다. 현재에 두 발을 올려놓고, 과거와 미래도 쳐다보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오로지 '현재'에 중점을 두고 소소한 행복을 음미할 줄 알아야 '재미'라는 요소를 어딘가에 흘리지 않고 주머니에 꼭꼭 가져갈 수 있는 것 같다.
일상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하루 일과 중 설레는 부분을 틈새마다 끼워두면 좋다.
예시를 들기 위해 내 하루를 시간대별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6:15 기상 후 출근 준비
7:00~8:00 아들을 깨워 옷 입히고, 아침 먹이고, 무사히 등교 (하루 중 스트레스 극강의 시간)
8:00~8:50 출근길 드라이브 (팟캐스트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 만끽)
8:50~9:00 베이커리 들리기(커피와 빵을 사서 회사로 출근)
9:00~9:45 아침 주요 업무보기 (스트레스 강도 높은 편)
9:45~10:00 사온 빵과 커피 마시며 밤새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 읽기 (맛있는 음식있고 읽을 거리 있으니 행복)
10:00~12:00 업무 (스트레스 강도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시간)
12:00~1:30 점심시간 (지인과 점심을 먹거나 운동을 하러 간다. 지인과 함께 식사 하며 수다 떠는 일도 즐겁고,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과정도 행복.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최고)
1:30~6:00 본격 업무 시작 (마감을 마칠 때까지 인터뷰 또는 취재. 본격 업무를 보는 시간인데, 마감 시간에는 시간에 쫓기느라 스트레스 강도가 높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즐기면서 일하는 편)
6:00~7:00 퇴근길 드라이브 (친구 또는 부모님과 통화하며 1시간 걸리는 통근시간을 즐기기)
7:00~8:30 육아 (이 시간은 기쁨과 피곤함이 반반씩. 그때 그때 다른 편)
8:30~11:00 자유시간 (남편과 와인을 마시거나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빨강색과 초록색으로 시간별 감정을 나눠봤다. 빨강색은 피곤하고, 고단할 때고 초록색은 내게 힘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때다. 색으로 구분해 놓고 보니, 빨강색과 초록색이 교차한다. 빨강색이라고 '즐겁지 않은' 시간인 건 아닌데, 초록색에 비해 비교적 즐거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나는 일상의 순간 순간에 초록색인 시간을 끼워넣어 스스로를 즐겁게 해주려 노력한다. 뭐 특별한 걸 해서 행복해 지는 게 아니다. 출근 길 듣는 팟캐스트, 아침으로 먹는 커피와 빵, 직장인에게 너무나 소중한 점심시간, 퇴근길 통화 등으로 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물론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아주 우울한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어떤 걸 해도 감흥이 없다. 내 우울함의 우물에 빠져 버린다. 하지만 그 때에도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긍정 회로를 돌린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 일상 속 즐거운 요소들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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